마법의 LG '백색 가루' 기저귀 시장 판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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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LG화학 연구원들이 실험실에서 고흡수성수지(SAP)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증류수 약 200㎖가 담긴 비커에 파우더 형태의 SAP 가루 약 2g(사진 가운데)을 넣었더니 증류수가 SAP와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 [사진 LG화학]
젤리 형태의 고체로 변했다. [사진 LG화학]

지난달 27일, 전남 여수 산업단지 내 LG화학 실험실. 각종 소재를 다루는 연구원들이 티스푼 하나에 올려질 정도의 백색 가루 2g을 증류수 200ml가 담긴 비커에 부었다. 약 1분 뒤 비커를 뒤집었다. 쏟아져야 할 물은 비커 안에서 그대로 젤리처럼 변해 있었다. 비커를 거꾸로 뒤집었는데도 물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온도 24도, 습도 45%’ 상태에서 조건별 실험을 반복했다.

 눈 깜짝할 사이 물을 젤리로 만들어버리는 이 특수 소재는 고흡수성 수지 ‘SAP(Super Absorbent Polymer)’이다. 단 4g 정도만 있어도 약 2리터(L)의 물을 모두 흡수하는 ‘마법의 가루’다. SAP에 흡수된 물 분자는 사슬 모양의 분자 구조 안에 갇혀 외부로 새어나오지 않기 때문에 SAP은 유아용·성인용 기저귀, 생리대 같은 여성용품에 주로 쓰인다. 국내에선 2007년 코오롱으로부터 생산 설비를 인수한 LG화학만이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실험실을 지나 SAP을 생산하는 4층 높이 공장에 들어가니 약간의 화학 약품 냄새와 함께 기계 돌아가는 소음만 들렸다. 모든 공정이 파이프 안에서 이뤄져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송희윤 LG화학 SAP 공장장은 “위생이 매우 중요한 소재이니만큼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전(全) 공정을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하고 있다”면서 “포장·배송 역시 밀폐공정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SAP 완성품은 900㎏∼1t씩 대형 자루에 담겨 지게차를 통해 수출용 컨테이너에 옮겨졌고, 이 같은 과정은 모두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졌다.

 사실 SAP은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LG화학이 꺼내든 ‘비장의 무기’다. 독일 에보닉, 바스프(BASF), 미국 다우, 일본 쓰미모토 같은 기업들만 공정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시장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LG화학은 여수 공장 내 나프타분해시설(NCC)도 갖추고 있어 SAP의 원재료인 아크릴산을 자체생산할 수 있다. SAP은 아크릴산과 가성소다를 섞어 만든 반죽을 건조해 잘게 부순 뒤 특수코팅을 거쳐 만들어진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프라이스한나컨설턴트 조사 결과, SAP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13년 206만t에서 내년 말에는 246만t 규모까지 연평균 6%씩 성장할 전망이다.

 LG화학의 연간 SAP 생산량은 28만t 규모로 글로벌 4위다. LG화학은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여수에 네번째 공장을 건설 중이다. 중국·인도에서는 유아용 기저귀, 유럽 등 선진국에선 고령화 현상으로 성인용 기저귀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SAP의 시장 전망은 매우 밝다는 게 LG화학 측의 설명이다. LG화학 연구팀은 기저귀도 나라마다 트렌드가 다르다고 귀띔해줬다. 중국은 수분 흡수 속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고온다습한 남미에서는 뽀송뽀송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걸 선호한다.온도가 올라가면 SAP의 흡수력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나라별로 기저귀에 들어가는 SAP의 양이 달라진다. 여기에 유럽·북미 등 선진국은 기저귀 맵시까지 챙긴다고 한다. 백윤미 LG화학 연구원은 “보통 기저귀 1개에는 SAP 10g이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와 미국·일본에서는 아이의 옷맵시를 생각해 SAP 용량을 늘려 기저귀를 얇게 만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수(전남)=김영민 기자 bradkim@joi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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