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1)제80화 한일회담(90)-한,일 정치적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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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56년 봄엔 한일양국내에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4월5일 일본에서는 두개의 보수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자민당이 됐다. 「하또야마」 수상은 초대 자민당총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15일 정·부통령선거를 통해 이박사가 당선되고 부통령에는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씨가 당선됐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여야에서 선출됐다는 것은 약간은 기형적이라고할까, 확실히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사태였다.
일본측은 장면씨가 부통령에 당선된 사실을 놓고 한일국교 타개에 낙관이라는 식의 논평을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를 보여 우리측의 실소를 자아냈다.
그들은 우리 정치의 메커니즘을 이해 못하고 선거기간중 야당후보의 발언을 지레 확대해석해 그런 낙관론을 폈던 것이다.
선거유세도중 호남선열차에서 급서한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선생이4월1일 UP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한일간의 조속한 국교정상화를 위해양국 고위회담을 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는데 이를 두고 일본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했던 것이다.
신후보는 『만약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일본지도자들과 회담할 용의가 있다. 한일양국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부당한 감정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후보는 『우리 야당은 한일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다른 국가와의 의견차이를 해결할 때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 『이대통령은 지나친 개인적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 고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이박사의 강력한 배일주의에 어느정도 반발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보여 자유당정권 말기에 장부통령 외신회견등을 해 한일고위회담의 필요성을 지적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신후보가 마지막에 특히 강조한 점을 일본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신후보는 『일부 일본지도자들은 아직도 대한우월감을 갖고 있다』 고 전제, 『특히 일본수상 「하또야마」 씨와 외상 「시게미쓰」씨는 제국주의적 정치인』이라고 규탄해 그들의 자세가 변화돼야할 것임을 촉구했던 것이다.
야당의 정·부통령후보가 선거유세를 통해 이박사의 대일자세에 약간의 시비를 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보수세력의 집결체였던 민주당의 외교정책은 대미·대일 외교에서는 비교적 초당적 입장에 서서 정부입장을 적극 지지했다고 봐도 된다.
이러함에도 선거결과를 놓고 일본측의 반응은 순진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무지스럽다고나 할까, 하옇든 재미있는 반응을 다음과 같이 보였는데 내가 이 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나의 후배 외교관들에게 정세판단에 신중해야 한다는 타산지석으로 삼게하고자 하는 뜻에서다.
우선 일본정부 당국은 우리나라 선거에서 야당 부통령의 당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구명하려는 일방 장면씨의 부통령 당선이 한일관계와 중대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관변측은 선거결과를 분석한결과 한국 민중은 단순한 반일·반공적 구호에 이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났다고 그야말로 자기들 멋대로 해석해 우리를 아연케 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한술 더떠 『장씨는 이번 선거에서도 대일우호를 말하고 있었으므로 이대통령으로서도 종래와 같은 감안한 일방적 태도에 다소나마 제동이 가해지지 않을까 기대된다』 (일본경제신문) 고 논평할 정도였다.
한국에서의 이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부통령의 기능,다시말해 권력구조내의 역학관계를 이해못한 소치였다.
이런 형편이었으므로 4월이후 10월까지는 다음 회에서 밝힐 일본측의 일부 재일동포 북송기도와 우리측의 방해공작을 둘러싼 양측간의 팽팽한 신경전 이외에는 뚜렷한 회담재개노력이 쌍방간에 없었다.
그런 배경에는 또 12월로 예정된 일본 자민당총재 선거를 둘러싼 집권당내 파벌간의 극심한 암투도 한몫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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