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명품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04년 4월 이탈리아 로마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북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과거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무엇을 사는 지 궁금해 지켜보았다. 그가 고른 것은 페레가모 핸드백이었다. 당시 가격으로 1,600 유로였다. 그는 “안해(아내)가 반드시 명품 핸드백을 사 오라고 신신 당부했다”며 싱글벙글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먹고 살기도 힘들 텐데 무슨 명품 핸드백이야. 차라리 옷이나 음식이나 사 갈 것이지”라며 속으로 안타까웠다. 당시 내 머리 속에는 한국 TV에서 본 북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TV에서 본 북한 모습은 전체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다.

북한 여성들도 한국 여성들처럼 명품을 좋아한다. 특히 돈 있는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10월 평양을 다녀온 재미교포는 “고려호텔 식당에 앉아 있으면 서울 강남 여성들에 못지 않는 멋쟁이 평양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대개 고급 명품으로 자신들을 과시한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 베이징에서 외국 기업을 상대로 대북 투자를 유치하는 북한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평양에 연간 소득이 4만 달러 이상 되는 사람이 1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 북한 사회가 시장의 부분적 허용과 제한된 경제개혁 조치로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변해가면서 붉은 자본가(Red Capitalist)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귀뜸해 준다.

이런 변화에서 주목할 대목은 북한에도 명품을 구매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현재 그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중국·일본 등지를 통해 명품을 구매하고 있다. 따라서 권력층과 연결된 붉은 자본가들은 평양에 명품관을 지으려고 한다. 그것이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은 김일성광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백선행 기념관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한다. 백선행(1848~1933)은 민족교육과 문화사업에 헌신한 평양 거부(巨富)로 85세에 소천할 때까지 31만 6천원(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316억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928년 완공된 이 기념관은 화강암 3층 석조건물(1층 도서실, 2~3층 대강당)이다.

지금은 노후화돼 지하 1층, 지상 6층으로 개보수해 지상 1개층을 명품관으로 운영하고 나머지는 목욕탕, 식당, 커피숍(2개층), 기념관 및 사무실 용도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이 관심을 갖는다면 평양에 명품관을 짓는 것보다 기존 백화점의 일부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평양에서 제일 큰 백화점인 평양 제1백화점의 1개 층이나 일부 코너를 임대해 진출한 다음 경영환경을 지켜보고 확대해도 좋을 듯하다. 작게 출발해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크게 출발해 실패하는 것보다 낫다.

지금은 5.24조치로 당장은 어렵다. 하지만 5,24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넋 놓고 있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빼앗긴다. 그 동안 대북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부터 공부하자. 준비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는 온다.

分久必合 合久必分(오래 분열된 나라는 반드시 다시 통일되고, 오랫동안 통일된 나라는 반드시 분열한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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