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에중독된M세대] 휴대전화 두고 등교하면 조퇴할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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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없으면 불안하다=중.고교 교실에서 수업 중에 휴대전화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서울 A고 강모(42) 교사는 "휴대전화기를 집에 놓고 온 뒤 별의별 핑계를 대고 조퇴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조사에서도 청소년 10명 중 4명이 '특별히 문자나 전화가 오지 않아도 휴대전화를 계속 꺼내 본다'고 응답했다. '목욕 중에도 옆에 휴대전화기를 둬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도 20%에 달했다.

10명 중 3명은 벨소리만 들려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전화가 안 왔어도 벨소리가 들리는 '환청'현상까지 겪는다. 서울 B여고 박모(16)양은 "휴대전화기를 진동으로 해놓고 수업받는데도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단말기를 꺼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정동선(신경정신과) 교수는 "상당수 청소년이 휴대전화를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단말기가 손에 없을 경우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생활리듬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 말보다 문자가 편하다=경기도 C중 2학년 김모군은 얼마 전 여자 친구인 최모(13)양에게 하룻밤에 100여 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 내용도 간단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잠이 안 온다'는 최양을 재우기 위해서다. 김군은 "여자 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문자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서울 D여고 김모(32)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쪽지를 돌리는 풍경은 구석기시대"라며 "요즘엔 선생님 몰래 휴대전화로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요즘 청소년들은 '통화보다 문자메시지 사용이 더 편하다'(39%)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병목 극동대 교수는 "메시지 내용이 무의미해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청소년들에겐 서로의 관심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설명했다.

문자에 익숙해지다 보니 청소년들은 평균 분당 100타의 문자를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 신체적 통증까지 야기한다. 작은 공간에서 쉴 새 없이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혈액순환장애가 발생해 어깨통증으로 이어지는 '단순반복증후군' 증세가 고교생 10명 중 1명꼴로 있다고 분당서울대병원은 진단했다.

◆ 콘텐트 부작용도 크다=서울 F중 최모(15) 군은 얼마 전 부모가 휴대전화를 빼앗고 서비스를 끊어 버리자 가출했다. 한 달 휴대전화 사용료가 53만원이나 나와서다.

요금 내역도 주로 야사(야한 사진)와 야설(야한 소설) 등 음란 콘텐트 내려받기였다. 이번 조사에서도 일부 중.고교생 사이에선 휴대전화가 음란성.악의성 메시지 교환 등에 쓰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부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설할 경우 청소년들이 성인 콘텐트에 무방비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휴대전화는 친구들끼리 '왕따'시키는 데도 쓰인다. 청소년 5명 중 1명은 휴대전화로 악의성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경험이 있고,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한 응답자도 11%에 이르렀다. 휴대전화는 게임에 몰입하게도 한다. 모바일 게임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콘텐트다. 서울 G고 이모(16)군은 "처음엔 등하교나 쉬는 시간에만 게임을 했으나 요즘엔 수업 중에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 조사기관인 마케팅인사트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이동통신 가입자 중 매일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비율이 15%나 됐다.

◆ 정부.학교.부모가 나서야=청소년들이 휴대전화기를 24시간 들고다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있는 인터넷이나 게임의 중독보다 그 영향이 더욱 크다. 특히 휴대전화 중독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숭의여대 강심영(가정복지과) 교수는 "휴대전화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중독 현상도 문자메시지.모바일 게임.음란 콘텐트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모바일 중독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진국에선 모바일 중독이 우울.불안.수면장애.적응장애 등의 증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국 정부는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뇌에 흡수돼 면역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16세 이하 청소년의 휴대전화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민간 학계에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그쳐왔다. 이번에 정부가 휴대전화 중독 실태조사에 막 나선 정도다. 부모나 교사 등도 그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장정훈.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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