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학과폐지 실험...내년부터 12개 단과대 단위로 모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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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12개 단과대 단위로 모집한다. 단과대 내 학과 구분을 없앤 것이다. 학생들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전공은 정원을 빼앗기며, 해당 전공 교수는 교양과정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이용구 중앙대 총장은 26일 이런 내용의 학과 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이 총장은 "기업은 공과계열 분야 전공자를 많이 요구하고 있으나 대학 구조는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과학·공학 계열이 반반"이라며 "이 같은 '미스매치(mismatch·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학과 체제를 개편키로 했다"고 말했다.

12개 단과대 중 한 곳에 입학한 학생은 ^1학년 때 인문학·소프트웨어 교육 중심의 '교양(리버럴 아츠·liberal arts) 교육 ^2학년 1학기엔 단과대별 공통 전공 기초과정을 각각 수강해야 한다. 2학년 2학기부터 주전공 과정에 들어간다. 또한 모든 학생이 4학년까지 인문학 교육도 받는다. 중앙대는 이 같은 단과대 단위 모집이 정착되면, 2021학년도부터는 모집 단위를 5대 계열(인문사회, 자연공학, 예술체육, 사범, 의ㆍ약학ㆍ간호)로 더 넓히기로 했다.

박상규 행정부총장은 "전공별 수용 인원은 학생의 희망, 사회적 수요 등을 감안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전공별 학생 정원은 과거 3년간 전공을 선택한 인원의 120% 수준이다. 희망 인원이 이를 넘기면 성적 기준으로 선발한다.
학생 수요가 적은 전공은 정원이 단계적으로 준다. 정원이 주는 경우 해당 전공의 교수도 줄게 된다. 해당 교수는 교양과정 소속 교수가 되거나 새로 전공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 선호가 낮은 인문학 전공 소속 학생·교수 수는 줄고 상경계·공학 계열 소속 학생·교수 수는 늘어날 수 있다.

대학의 학과 구분 폐지는 20여 년 전 학부제 시행 때도 있었다. 당시 학부제는 학생들이 몰리는 인기 학과나 전공은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기존 학과를 사실상 그대로 둔 채 모집 단위만 넓히는 바람에 학생들의 전공 선택의 시기만 늦췄을 뿐 대학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대의 이번 시도는 과거 학부제와 유사하나 학생들의 전공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교양 교육을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1학년 시기 집중적인 교양 교육을 받고, 2~4학년에도 매년 인문학이나 융·복합 강의를 수강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대학들도 중앙대의 학과 폐지를 파격적인 실험으로 받아들였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학교 운영과 대학 교육에 학생·사회의 수요를 직접 반영하려는 과감한 시도"라며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과거 학부제처럼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대 내부에선 이미 반발이 나온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이 학교 교수들은 이날 기자간담회에 찾아와 입장을 밝혔다. 김누리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학교가 내세운 구조조정은 밀실에서 진행한 학문에 대한 쿠테타다. 대학과 학문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인성·노진호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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