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대입학력고사를 보고…진학지도교사·수험생 좌담|〃점수〃보단 〃등수〃가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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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화웅교사=수험생이나 일선진학지도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시험문제가 지난해에 비해 심화되고 사고력을 요구하는 등 국어Ⅰ·영어·수학Ⅰ·과학과 여학생의 가정 등이 상당히 어렵게 출제됐다더군요
▲최대환교사=특히 영어는 83학년도엔 다른 외국어와의 격차를 피하기 위해 쉽게 출제됐었으나 이번엔 지문(地文)이 길어 수험생들이 문제풀이에 시간부족을 하소연하더군요. 문제의 양이 전반적으로 많아 문제조차 제대로 읽지 못한 학생이 많았다는 얘깁니다. 특히 외국어와 함께 치른 국어Ⅱ·수학Ⅱ에 대한 부담으로 외국어에서 실패한 수험생이 의외로 많을 것 같습니다.

<외국어 실패율 높아>
▲홍승운교사=출제위원회측은 이번 시험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쉽게 출제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각 과목에서 예상했던 바와는 상당히 차이가 날 정도로 어렵게 출제된 것이 사실이예요.
▲송영호실장=일부 학교를 표본 조사해 본 결과 수험생들의 득점 수준은 3백점이상 고득점자 분포가 82학년도 수준에 머물 전망이예요.
▲장윤석군=그래도 국어I·한문 등을 치른 1교시와 수학I·정치·경제·국사 등을 치른 2교시까지는 수험분위기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점심 식사 후에 치른 3교시 영어시간이 끝났을 때는 수험생들의 표정이 대부분 침울했어요. 한번 사기가 저하되자 4교시의 시험에도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이 있었던 것 같았어요.
▲유교사=수험생들에게 문체가 다소 까다롭게 출제됐다고는 하나 국어I의 경우 지난번에는 1백11개 고교전과정단원에서 22개 단원만이 출제돼 전체교과단원의 20%에 한정됐으나 이번에는 모두 34개 단원이 출제돼 전체단원의 31%에 걸쳐 비교적 고루 출제됐으며, 1·2·3학년 전 교과과정이 10개 단원이상씩 출제돼 바람직한 출제경향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출제가 지속된다면 일선고교에서 출제빈도가 높은 일부 단원에 치우쳐 가르치는 등의 변칙수업이 지양되고 정상적인 수업을 유도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시험문제들을 분석해보면 현대문64%(32문항) 고문30%(15문항) 한문6%(3문항)로 적절히 출제됐으며 장르별로도 고루 출제가 됐어요. 과거에는 한자·한문의 단원구별이 힘들었으나 이번에는 한문과목이 독자적으로 출제돼 앞으로 일선학교의 학습지도방향을 설정해준 감이 있어요.
국어Ⅱ의 경우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평이한 문제들이 출제돼 수험생들의 한가닥 불안감을 씻어 주었어요. 특히 원고 쓰는 법 등의 출제는 객관식문제의,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으로 봐야할 것 같아요.

<상위권 수험생 당황>
▲최교사=학력고사 자체가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유무여부를 가리는 선발고사의 역할을 하는데 출제기준이 일정치 않아 일선학교에서 지장이 많을 뿐 아니라 지난번에는 문제가 쉽게 출제됐다가 이번엔 갑자기 어려워지는 등 변화가 심해 교사들조차도 감을 잡기가 힘들어요. 발음·어휘·문법·생활영어·영작·독해력 등 다양한 테스트서 하는 문제가 나온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문제 자체가 너무 어려워 수험생들이 고전을 했다는 거예요.
특히 이번에 추가된 수학Ⅱ·국어Ⅱ가 영어와 함께 치러진 것이 수험생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해 더욱 점수가 좋지 않으리라 생각돼요.
영어의 경우 지난해보다 4∼5점 가량 평균점수가 멀어질 것으로 봅니다.
▲송실장=과학과목 중 생물·화학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물리와 지구과학에서 몇 문제가 많은 추리와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문제가 출제돼 지난해보다 2∼3점가량 낮아지리라는 얘기예요. 특히 물리과목에서 시간을 많이 끌어 당황한 수험생들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수학Ⅱ는 처음 출제돼 걱정들을 많이 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는 쉽게 출제됐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러나 수학I은 지난번보다 다소 어렵게 출제돼 도형·적분·수열의 극한 등 3∼4문항은 계산과정이 힘들어 자칫 상위권 수험생마저 놓치기 쉬운 문제였다는 평입니다.
▲홍교사=여학생의 경우 가정과목이 어려웠다고들 하더군요. 그러나 지난번까지 남학생들이, 치르는 실업과목에 비해 가정이 상대적으로 쉬웠다가 이번에 남녀의, 난이도가 적정 선에서 조정됐다고 보는 것이 담당교사들의 분석이더군요.
사회과목은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문제형식이 바뀌어 암기만 하면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예년과는 달리 사고와 이해를 효구하는, 즉 종합적인 조감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 많았어요. 이러한 출제방식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득점자 작년 절반>
▲유교사=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수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문제출제가 잘못됐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학입학학력고사에서는 득점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전체에서 자신이 몇번째인가 하는 등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니까요.
▲홍교사 『출제위원회측이 시험 전에 문제를 쉽게 출제했다고 발표를 해 이를 믿고 있던 수험생들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를 대하자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평소 3백점을 예상했다가 2백80점을 받았다면 수험생으로서는 이번 시험에 크게 실패했다고 믿거든요.
▲장군=시험이 끝난 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풀이 죽어 우울한 표정들이었는데 12월31일에 가서야 점수분포가 밝혀진다니 우리 수험생들은 그때까지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견뎌야 될 것 같아요. 문교부에서 가능하면 채점이 끝나는 대로 기일을 앞당겨 조속히 성적분포를 알려줘 답답한 마음을 물어주었으면 해요.
▲최교사=동감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라 자칫하면 우울증에 빠질 우려도 있고 하니 성적발표는 빠를수록 좋다고 봅니다.
▲황덕순군=학급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번엔 득점분포가 하위권에 더 많이 몰릴 것 같더군요.
▲유교사=3학년이 10학급인 저의 학교는 예년의 경우 서울대를 비롯, 사립명문대에 1반에 평균20명 정도가 입학을 해 왔는데 이번 경우는 성적발표가 있고 나서야 진학지도를 해야할 형편입니다.
▲최교사=12학급인 저의 학교도 평소 모의고사 등을 치러보면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40여명이 나왔으나 이번 시험 결과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선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하향분포를 보일 것이 예상되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노군=남학생과 여학생간의 난이도 조정은 어떻습니까.
▲홍교사=지난해까지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다소 유리한 입장에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여학생은 문과가 이과에 비해 월등히 수적으로 많아 내신 성적도 좋은 잇점이 있었으나 금년엔 여학생과목인 가정이 비교적 어렵게 출제돼 실업·가정과목간의 난이도가 조절됐다고 봅니다. 따라서 지난해에 비해 고득점 여학생숫자가 남학생보다 비교적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또 금년에 추가된 수학Ⅱ에서도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이 다소 불리하다고 봅니다.

<신설학과 자료 없어>
▲유교사=대학과 학과선택에 있어서는 큰 문제나 혼란이 없다고 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학력고사에서는 점수보다는 등수가 중요하므로 지난해처럼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급격히 늘어나 혼란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높은 점수를 기대했던 수험생이 자신의 점수가 예상보다 낮아져 정신적으로 위축될 수는 있겠지만 진학지도교사와의 신중한 상담을 거친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최교사=지난해까지는 문과생의 경우 여학생이 몰리는 학과는 피하라는 말이 있었으나 금년에는 잇점이 많이 완화될 것 같아요. 그러나 여학생들은 안전위주로 학과를 하향선택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알아야지요.
▲홍교사=대부분의 대학이 과별모집을 하는데 신설학과들에 대한 기준자료가 없어 진학지도에 다소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유교시=끝으로 이번 학력고사에 대해 다시 한번 종합해보면 우선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문제였다는 평입니다. 선발기능도 크게 강조됐던 것 같습니다. 또 1∼2문제를 제외하곤 대부분 교과서를 중심으로 충실히 출제됐으며 종전의 암기위주에서 탈피, 보다 이해와 사고력·추리력을 요구하는 응용문제가 많이 나온 것도 좋았습니다. 욕심을 더 부린다면 영어과목에서 생활영어가 더 출제됐으면 좋았을 것이고 정치·경제과목은 다소 몇 단원에서만 편중 출제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정리=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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