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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마시는 와인, 비행기에선 왜 맛이 다르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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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01면

다섯 가지 기본 맛(짠맛·신맛·단맛·쓴맛·감칠맛)을 중심으로 발달한 인간의 미각은 진화의 산물이다. 소는 풀만 먹고, 고래는 플랑크톤만 먹는다. 고양이는 달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중환(진화심리학) 교수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과일·꿀같이 높은 에너지원이 되는 음식을 선호하는 것이 번식에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미각의 비밀, 과학이 벗기다.

[사람 미각 발달은 진화와 학습의 결과]
단맛을 내는 당은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필수물질이다. 짠맛은 혈액 체액의 삼투압을 조절하고 신경자극이 잘 전달되도록 돕는다. 신맛은 몸의 수소이온농도(PH)를 조절한다. 쓴맛은 주로 독성을 나타낸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생존에 비교적 많은 양이 필요한 탄수화물·소금은 농도가 높아야 짜거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몸에 독이 되는 성분은 미량이라도 예민하게 감지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20세기 일본 과학자가 밝혀낸 감칠맛(우마미)은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위한 맛이다. 강릉원주대 치의학과 김경년(화학감각연구회장) 교수는 “단백질 자체는 맛이 없지만 단백질의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 형태일 때 맛을 느낀다”며 “그중에서도 우리는 몸에 좋은 단백질 맛인 글루탐산(Glutamic acid)을 강력하게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특정 맛을 느끼면서 얻는 쾌감은 물질이 몸에 필요하기 때문에 더 먹기 위한 뇌의 작용이다. 임산부는 혈액량이 증가해 혈중 나트륨 농도가 떨어진다. 임신 전보다 짠맛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서 단것을 찾는 이유는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이 돼서다.
 매운맛·떫은맛·아린맛·찬맛(박하의 화한 맛)은 엄밀히 말하면 ‘미각’이 아니다. 이들 맛은 입안 신경에 생기는 느낌으로 맛세포와 관련이 없다. 입안이 얼얼한 매운맛은 ‘통증’을 느끼는 피부감각이다. 떫은맛은 입안의 점막이 수축한 탓이다.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이 혀의 점막 단백질과 강하게 결합한다. 박하의 화한 맛은 피부의 온도 감각이다. 박하 성분인 멘톨이 침에 녹으면 주변의 열을 흡수해 입안 점막 온도가 낮아진다.
 

[비만아 미각 민감도 정상아보다 떨어져]
미각이 가장 건강할 때는 언제일까. 신생아의 미뢰 숫자는 성인보다 훨씬 많다. 그렇지만 미뢰의 수와 미각능력이 비례하는 건 아니다. 미각은 학습의 산물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 풍부한 맛을 즐기도록 미각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프랑스의 미식문화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에서 아이들의 미각 발달 교육을 적극 실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각이 불균형해지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맛에 집착하는 때다. 미각세포가 강한 자극을 받아 뇌 시상하부의 식욕 조절 중추를 자극하면 쾌락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다. 이 같은 뇌의 보상시스템을 강하게 자극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중독 현상이 나타난다. 박민선 교수는 “미각이 둔해지면 더 강한 맛을 느끼기 위해 음식을 더 먹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6~18세의 비만 어린이 99명과 정상 체중 어린이 94명의 미각 능력을 조사했더니 비만아의 미각이 정상 체중 아이보다 민감도가 10% 이상 떨어졌다(독일 차리테 어린이병원 연구팀, 2012).
 나이가 들면 미각도 노화한다. 맛세포는 45세 이후부터 숫자가 줄어든다. 박민선 교수는 “노인은 짠맛에 둔감해져 혈압 이상이 생기거나 입맛이 떨어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고 말했다. 이럴 땐 음식의 향·색깔·모양을 살려 입맛을 돋운다. 소금의 절대량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박민선 교수는 “저염식을 하면 짠맛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져 싱거운 음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당뇨환자 혈당 걱정 않고 단맛 즐길 수도]
과학에서는 미각을 지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각 경로를 해킹하면 인간이 미각을 지배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폭식을 예방하고 입맛을 돋워 건강을 되찾게 하는 데 이용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미각회로는 이렇다. 혓바닥·입천장·후두·인두에는 식품의 화학물질을 인지하는 센서인 미뢰가 있다. 1개의 미뢰는 20~30개의 맛세포로 구성된다. 신맛을 내는 수소이온과 짠맛을 내는 나트륨이온 등 각종 화학물질이 침에 녹아 맛세포를 자극하면 미각회로의 스위치가 켜진다. 전기신호가 만들어지면서 뇌 안쪽의 두정엽 깊은 곳의 미각중추로 이동한다. 뇌는 그간 학습한 경험으로 음식의 종류와 맛을 연결해 입력한다.
 지난달 학술지 ‘셀(CELL)’에서는 망가진 미각을 치료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논문이 발표됐다. 뇌에서 맛 중독에 관여하는 뉴런을 발견한 것이다. 실험 쥐의 뇌를 관찰한 결과, 뇌의 시상하부에서 복측 피개영역으로 신호를 보내는 뉴런이 활성화하면 단맛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였다. 이 뉴런을 억제하더라도 정상 식이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혀끝에 전기자극을 줘 미뢰를 속이는 가상 미각장치도 개발 중이다. 당뇨환자가 혈당치를 높이지 않고 단맛을 즐기고, 암환자가 입맛을 잃지 않고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인간의 혀보다 1억 배 민감한 ‘전자혀’는 민감한 이온센서로 맛을 감별해 낸다. 산도·당분을 감지해 포도의 숙성 상태를 파악하고, 맥주의 발효 정도를 측정해 낸다. 인간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독극물을 감별해 낼 수 있다.

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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