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행복과 공약가계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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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18면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로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이뤄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선언했다. 석 달 뒤 발표된 ‘공약가계부’는 그런 대통령의 의지가 집약된 ‘압축파일’이었다. ‘4·11 총선 공약, 대선 공약, 박근혜 정부 140개 국정과제 등 그동안 내놓았던 국민과의 약속을 빠짐없이 이행하기 위한 실천 계획으로써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원 대책도 제시해 실천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약가계부’에 대한 화려한 배후광(아우라) 이면에 희미한 결함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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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가계부는 복지 가계부]
첫째로 공약가계부에는 취임사의 정신과는 달리 경제 부흥과 창조경제의 내용이 거의 없었다. 취임사 내용의 경중에서 볼 때 ‘경제 부흥’이라는 국정 기조를 맨 머리에 두었을 뿐 아니라 그 안에는 ‘창조경제’라는 핵심 개념이 들어 있다. 그만큼 국정 기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공약가계부의 경제부흥에 대한 재정 지원에는 주거안정 지출(11조6000억원)과 교육비 경감(8조7000억원)이 들어 있어 이를 빼면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한 8조1000억원(전체의 6%)에 불과했다. 경제 부흥과 창조경제가 그토록 중요한 공약이고 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재원의 배려가 공약가계부에 없다는 것은 중대한 결함이다. 공약가계부는 경제 부흥을 위한 가계부가 아니라 국민 행복을 위한 ‘복지가계부’라는 표현이 더 타당하다.
둘째로 공약가계부의 여러 가지 국민 행복(=복지) 프로그램들이 부실하게 계획됐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공약가계부에서 약속했던 프로그램 중에서 아직도 시행을 하지 못하거나(3~5세 누리과정 지원, 고교 무상교육 등) 변경(기초연금)된 게 있다. 그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들은 5년간 지출될 금액의 80% 이상을 2013~2014년에 이미 지출한 상태(0~5세 보육양육수당, 소득 하위 30% 반값등록금 지원)가 됐다. 지원 대상이나 범위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결여됐다는 증거다. 민간 기업에서 그런 착오가 일어났다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기조가 걸려 있고 대통령 정책의 상징적 이미지가 결부된 과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셋째로 첫해부터 세입 확충 측면에서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비과세 감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2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착상은 애초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공약가계부에는 2013년과 2014년 국세 수입을 각각 205조9000억원과 210조6000억원(총 416조5000억원)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국세 수입은 201조9000억원과 205조5000억원(총 407조4000억원)에 불과했다. 각각 4조원과 5조1000억원이 줄어든 셈인데 누계로 보면 당초 공약가계부 세수 계획보다는 9조1000억원이 덜 들어온 셈이고 전체 국세 확충 목표(48조원)의 19%에 달하는 금액이다. 공약가계부대로라면 올해 국세 수입은 214조1000억원이 돼야 하는데 이는 2014년보다 4.2% 증가한 금액이다. 2014년 국세 수입이 겨우 1.78% 증가한 데다 지난해 기업들의 실적이 나빴으므로 올해 법인세는 지난해보다 훨씬 못할 것이 분명하므로 214조1000억원의 국세 수입은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세출 절감 계획도 달성 어려워]
넷째로 세출 절감으로 84조1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우선 줄이겠다던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이나 산업 지원은 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복지 지출의 축소나 농림수산 분야의 지출 감축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렇게 되니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또다시 ‘복지 논쟁, 증세 논쟁’이 불붙었다. 정밀하고 실행 가능하게 공약가계부를 수립하지 못한 결과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만 잔뜩 올려놓고 이제 한쪽에서는 한국의 복지 수준이 그렇게 열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조차 “한국은 이미 높은 수준의 복지가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따라붙게 돼 있다”고 했다. 공약가계부에서 약속했던 복지를 줄이자는 얘기가 뒤따를 것 같은 분위기다.

신세돈.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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