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정계에 '오시'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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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독일 정가에 오시(Ossi.동독인)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16년 만에 오시 정치인들은 베시(Wessi.서독인)를 제치고 통일 독일의 양대 정당 당수에 우뚝 섰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에 지명된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수와 15일 사민당수에 선출될 마티아스 플라첵 브란덴부르크 주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까지 연방하원 의장을 지낸 사민당의 볼프강 티어제 부당수도 동독 출신이다. 또 5월까지 자민당 사무총장을 지낸 코넬리아 피퍼 의원, 이번 총선에서 좌파 선풍을 일으킨 그레고어 기지 전 민사당수도 동독이 배출한 스타 정치인들이다.

골수 오시를 자처하는 로타 비스키 좌파 당수는 현재 하원 부의장을 노리고 있다. 오시 정치인의 맏형격인 사민당의 만프레드 슈톨페 전 교통건설부 장관은 여전히 당 안팎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아무도 메르켈과 플라첵 두 사람이 당권을 차지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잡지는 "이들이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은 서독 정치인들이 벌인 권력 다툼의 결과"라고 덧붙였다. 메르켈에겐 기민당이 1998년 불법 비자금 사건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플라첵 주지사는 사민당이 사무총장 선출 문제로 내분에 빠지면서 당수 자리가 굴러들어 왔다. 당 지도부는 중진 의원들이 인맥을 동원한 당권 싸움을 벌이자 때묻지 않은 플라첵을 발탁했다. 그러나 이들이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 운 때문만은 아니다. 슈피겔은 "이들은 모두 다 실용주의자이고 현실감각이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사민당의 한 의원은 "유권자들이 말만 잘하는 서독 정치인들에게 식상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정치놀음에 익숙한 서독 출신들은 더 이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동독 출신은 말싸움보다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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