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길은 가운데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한국의 3대 보수주의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뉴라이트네트워크.선진화정책운동 중에서 앞의 두 조직은 자유주의를 최고의 정책목표로 내세웠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 발휘와 경쟁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요체다. 당연히 개인생활과 기업활동에 대한 국가.사회의 간섭은 최소화돼야 한다. 자유주의가 오른쪽으로 많이 이동하면 신자유주의가 된다. 경쟁제일주의, 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일본의 나카소네의 노선이 신자유주의였다. 지금은 조지 W 부시와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신자유주의의 기수 노릇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단순화해 말하면 "억울하면 출세하라"다. 자유시장에서 경쟁에 진 사람을 돌보는 데 국가와 사회가 막대한 복지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다르다. 1960년대 초 미국 존 케네디의 자유주의 정부는 상당 수준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그의 자유주의를 계승한 린든 존슨은 흑인에게 백인과 동등한 인권을 보장하고 빈민층에 의료혜택과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위대한 사회'의 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 뉴라이트의 노선은 어떤가. 아직은 확실치 않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웠다. 공동체가 성립돼 순조롭게 굴러가려면 그 구성원 간에 갈등이 없어야 한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언제나 경제적인 격차다. 추상적인 이념에서 대강의 이해와 합의가 이뤄져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깊은 골이 생기면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고, 이미 세워진 공동체도 흔들린다. 그렇게 보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패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정책 프로그램의 우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라이트네트워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강화를 강조한다. 시장경제라는 표현만으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것인지,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나 독일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신중도에 더 접근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개혁 대상"이라는 기세로 나라를 기본부터 흔들고 있는 386 정권도 시장경제를 외치는 마당이니 뉴라이트네트워크는 노사관계와 경쟁에서의 패자에 대한 노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기대한다. 선진화정책운동의 노선은 흥미롭고 모호하다. 자유주의 대신 실사구시를 주장한다. 실사구시는 그 자체가 목적인가.

386 좌파 세력은 말로는 시장경제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정책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만 하면 좀 못살아도 좋다는 것으로 들린다. 속칭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이다. 성장이 없으면 분배할 것이 없어지는데도 용감하게 가진 자, 앞서가는 자, 경쟁의 승자에게 속도를 줄이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한국 사회가 뉴라이트에 기대하는 좌표는 스스로 분명하다. 신자유주의의 왼쪽, 386 좌파 정권의 오른쪽인 가운데(中道)라고 생각한다. 뉴라이트 세력에게 빌 클린턴이 1996년 엽기적인 섹스 스캔들에 시달리면서도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인 사회.경제정책 공약으로 거뜬히 재선한 배경을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다. 길은 가운데 있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