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주 기자의 '심톡']당신의 발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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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맛 같던 연휴가 어느새 다 지났습니다.

직장인들은 평소에도 일요일 저녁만 되면 '우울'해지기 마련이지요. 이번 일요일은 그 정도가 더 심하더군요. 그래도 전 이번 연휴에 새로운 결심한 게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결심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연휴 이틀째, 먹고 자고 뒹굴거리던 중 문득 책장 한쪽에 꽂혀 있던 한 권의 책을 빼내 들었습니다. 몇 달 전 사놓고 그냥 장식용으로 전락시켜버린 여느 책들 중 하나였습니다.

책 제목은 『와일드』입니다. 작가 셰릴 스트레이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뿐 아니라 제작까지 참여해 최근 영화로도 개봉됐죠.

아무튼 내용은 이렇습니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엄마가 죽고 이혼까지 한 작가는 어느날 문득 책에서 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란 도보여행을 떠날 결심을 합니다. 이 길은 멕시코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길입니다. 눈에 뒤덮인 산맥과 사막, 황무지 등을 거쳐 4285km를 걸어야 하는 극한의 트레킹 코스입니다.

보통 2인이 짝을 이뤄 걷는 이 길을 여자의 몸으로 혼자 들어선 도보여행 왕초보 주인공은 온갖 어려움을 다 겪지요. 본인 몸만큼이나 크고 무거워 스스로 '몬스터'라고 이름을 붙인 배낭은 어깨, 허리, 엉덩이를 상처투성이로 만듭니다. 한 치수 작은 등산화를 사는 바람에 발톱도 4개나 뽑지요. 또 휴대용 스토브에 엉뚱한 연료를 채워오는 바람에 여행 초기엔 조리가 필요 없는 말린 과일이나 육포, 에너지바 등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하지만 이런 역경을 거치면서 작가는 점점 강해집니다. 육체와 정신 모두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이런 도보여행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슷한 책을 보면 빼놓지 않고 훑어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실제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3년 전 강화도 둘레길 중 한 코스를 걸어본 게 다입니다.

대학생 땐 국토종단을 해보고 싶었는데 주변에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용기가 없던 전 포기했었죠. 몇 년 전부터 걷기 열풍이 불어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유명해졌을 땐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뤘습니다. 겨울에 가면 아름답기로 소문난 경북 봉화의 '승부역 가는길'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매년 모여든다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도 몇 년 째 저에겐 그림의 떡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2015년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다시 세웠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까지 위에 나열한 곳들 중 한 곳은 꼭 걸어보기로 말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도보여행을 가자고 말했을 때 "왜 고생을 사서하냐"고 했던 지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와일드』 속에 있어 마지막으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직접 내 발로 걸어 여행을 하는 건 이전에 해오던 여행과 완전히 달랐다. 길은 더 이상 그저 멍하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제멋대로 자란 잡초와 흙더미, 바람에 휘어지는 풀과 꽃들, 쿵쿵거리며 새된 소리를 내지르는 나무들도 친구가 된다. 거기에 나의 숨소리와 발소리, 걸을 때마다 쥐고 있는 스키 스틱의 딸각거리는 소리도 있다."

[심영주 기자의 심톡]
커피 한 잔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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