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북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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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버마의 대북한 단교조치는 이제까지 배한의 정체에대해 안이한 환상에 젖어있던 일본조야에 큰충격과 경고를 던짐으로써 일본의 대북한 인식과 자세에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외상취임이래 일관해서 북한과의 교류확대를 강조해온 「아베」(안배진태낭) 일본외상은 버마 정부의 통보를 받은즉시 담화를통해 북한의 랭군암살테러범행이 『용서할수 없는 비인도적행위』라고 규탄하고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 없으며』 『북한에 대해 앞으로 엄한 태도로 임할것』임을 천명했다. 일본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버마정부의 조치가『주권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찬양하고 일본정부가△북한과의 인적·문화적교류를 제한, 비자발급을 엄격히 규제하고△제3국에서의 외교관 레벨의 접촉을 억제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또 9일 방일하는 「레이건」 미대통령과의 수뇌회담에서는 미국의 극동에서의 「프레센스」(군쟁력을 중심으로하는 주재)를 강화할것을 요청하는 한편 유엔총회등 국제기관에서의 대북한 규탄결의문제등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균형」 「북한의 문호개방촉진」 등을 명분으로 대북한접근을 부채질하던 일본언론들도 잠에서 깨어난듯 『타국에 잠입, 친선방문중인 원수살해를 기도한 북한의 행동은 국제법뿐 아니라 인도적으로도 규탄돼야 한다』(조일신문6일사설), 혹은 『북한은 깊이 반성하고 북한에 영향력을 갖는 중공·소련,특히 중공은 북한의 자생을 촉구하라』(매일신문 6일자사설)는등 대북한공세의 포문을 열고 있다.
6일자 아사히(조일)신문은 『무엇을 노리는가, 북한외교』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통해 그동안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저질러온 「외교관 밀수」 「뇌물제공」 「무기수출」 「외국 군사훈련」 「테러」사건등을 일일이 열거, 북한이 국제적으로 흉악한 범죄집단임을 부각시켰다.
이제까지 한국을 외면, 북한측과 깊은 교류를 가져온 사회당에서도 이번 북한의 만행에 곤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당내 일부서는 『이번 기회에 북한일변도정책을 고치지않으면 큰일날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들고나올지는 좀더 기다려보아야 알 일이지만 랭군사건이 일본사회의 대북한자세에 전환점이 되고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같다.
문제는 전후 30년가까이 이핑계 저구실로 구축해놓은 북한과의 연계를 타산에 빠른 일본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과감히 끊을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는 70년대초 일본이 노골적인 양다리외교를 표방하면서 예상이상으로 깊숙이 맺어져 있다.
70년 5천8백만달러에 불과했던 일-북한 무역액은 10년후인 80년에는10배인 5억5천4백만달러에 달했으며 81년이후 다소 줄긴했으나 작년에도 4억6천5백만달러의 왕복거래 실적을 보이고있다.
인사교류면에서도 72년까지만해도 거의없던 일본인들의 북한방문이 73년부터 갑자기 본격화돼 매년 4백∼6백만명정도가 북한에 들어가고 있으며 북한사람의 일본방문도 71년에 31명이던것이 지금은 무역·시장조사등의 명목으로 1백∼2백명정도는 늘 일본에 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교류는 대부분 단체로 이루어지는데 일본에서 노조대표, 지방단체대표등으로 북한을 방문한 단체수는 81년에 55건, 82년에도 33건이 됐다.
일본·북한간에는 민간협정이란 이름아래 63년2월 「상사간의 상품거래에관한 합의」, 72년1월「무역촉진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됐으며 77년8월에는 「어업잠정 합의서」가 체결됐다 (작년부터 효력정지).
63년 「미쓰이」(삼정)은행을 효시로 시작된 일본은행과 북한의 조선무역 은행과의 콜레스계약(상호지점역할대행계약)에는 일본의 17개 은행이 참여하고있다.
이같은 일본·북한간의 경제·인적교류의 확대가 일본재계의 선도, 정부의 정치적 지원을 배경으로 해 왔음은 물론이다.
일본정부의 한반도정책은 65년 한일협정에서 한국을 유일한 합법정부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초부터 사실상 두개의 한국을 전제로 추진돼왔다 (산본강사저 『일조관계』).
한일관계정상화후 매년 열린 양국각료회담공동성명은 60년대말까지는 북의위협을 강조하고 『한국의 안전과 번영이 일본의 안정과 번영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해 왔으나 71년부터는 일본의 요구에 의해 「북의 위협」대신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강조되었다.
74년 당시의 「기무라」외상은 노골적으로 『한반도에 위협은 없다. 한국은 한반도의 유일합법정권은 아니다』라는 망언을해 한일간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했다.
「기무라」 망언은 외교절충으로 수습이됐으나 북한에 대한 착각에 사로잡힌 일본의 양다리 외교노선은 고쳐지지 않은채 지금까지 계속돼 금년 1월 「나까소네」 방한으로 「한일신시대」의 개막을 선언한후에도 「아베」외상은 북한과의 민간교류확대를 여러차례 강조한바 있다.
버마당국의 발표가 있자 일본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북한 규제방침을 밝히면서 『어업이 희생돼도 할수없다』는 말을했다. 실효된 민간어업협정의 연장교섭을 단념하고라도 대북한 강경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의의 표명이라고 볼수있다.
앞으로의 일본의 태도는 일본을 평가하는 또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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