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요리선생 … 레시피 10개쯤 보면 맛내는 법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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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은 삼수 끝에 미대에 진학해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한때는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애니메이터가 그의 꿈이었다. 현재 웹툰 `찌질의 역사`를 매주 금요일 연재 중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술에 비교하면 입시 미술은 기초부터 가르쳐요. 재미는 없어도 컵이나 구(球)를 그리는 것부터 철저히 해야죠. 취미 미술은 달라요. 잘된 작품을 한 번 모작해 보세요. 대충만 비슷하게 그려도 아주 뿌듯해요. 요리도 그래요. 정말로 근사한 요리, 레스토랑에 나올 법한 요리를 한 번 흉내 내 보세요. 성취감이 대단해요.”

 요리에 맛들이는 법을 묻자 웹툰 작가 김풍(37)이 들려준 말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전문 요리사들과 경쟁하며 그가 선보이는 요리만큼이나 파격적인 답변이다. 이 프로의 묘미는 매회 연예인 출연자의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그 출연자를, 즉 절대미각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미각을 만족시킬 요리를 단 15분 만에 내놓아야 하는 점이다. 김풍은 이른바 ‘야매요리’ ‘자취생 요리’의 풍부한 응용력으로 재미와 웃음을 안겨주곤 한다. 연출자 성희성 PD가 “김풍이 이기면 ‘내가 이긴 것 같다’고 좋아하는 시청자들, 특히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다”고 귀띔하는 그대로다.

 김풍 역시 서른 살 무렵 독립해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요리를 하게 됐다. “처음에야 주로 사먹었죠. 근데 자주 가서 늘 피자를 먹었던 이탈리아 음식점이 문을 닫게 됐어요. 레시피를 물었더니 단골이라고 알려줬어요. 재료를 구해 난생처음 피자를 만들어봤는데 비슷한 맛이 나는 거예요.” 마침 SNS가 유행하기 시작한 때였다. 멋진 그릇을 사다 요리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물건은 한 번 소유하면 욕구가 사라지는데 음식 만드는 건 달라요. 한 번 익히면 언제든 해먹을 수 있고.” 그렇다고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거나 조리사 자격증을 딴 건 아니다. 그의 요리 선생은 각종 블로그나 유튜브다. “요즘은 수천 가지 레시피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어요. 일단 요리를 하나 정하면 열 가지 정도의 레시피를 찾아봐요. 유명 셰프들은 저마다 독특한 레시피로 요리를 하는데 열 가지쯤 보면 꼭 지켜야 하는 기본이 뭔지 알게 돼요. 그 교집합은 지키고, 여집합은 변용을 하는 거죠.” 재미를 느끼면 빠져드는 습관도 한몫했다. 듣자니 고급 식재료만 아니라 새로 나온 인스턴트 식품까지 고루 섭렵하는 눈치다.

 정작 요즘은 따로 요리할 틈이 없다. 매주 금요일 네이버에 연재하는 웹툰 ‘찌질의 역사’ 때문이다. 2년 전 이 웹툰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만화가 김풍은 제2의 출발선에 섰다. 이미 20대 때 인터넷 폐인 문화를 다룬 만화로 큰 주목을 받았던 그다. 그의 ‘폐인가족’은 당시 포털에 연재도 하고 캐릭터 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운이 좋았는데 그걸 실력이라 생각했던 거죠.” 이른 성공을 맛본 뒤 그는 진득하게 만화를 그리는 대신 여기저기 하고픈 일을 기웃거렸다. 대학로 연극무대에 배우로 서기도 했고,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도 했다.

“뭐든 철없이 하다가 뒤늦게 깨닫는 편 같아요.” 다시 만화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새로 시작하는 신인 같은 자세로 준비했다. “결국 안 됐지만 일본에 연재하려고 2년쯤 준비했어요. 그쪽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아 콘티를 고치고 또 고치고… 큰 공부를 했죠.”

‘찌질의 역사’도 1년 넘게 콘티를 미리 준비했다. 1990년대 말 대학 신입생이 된 네 남자가 연애 과정에서 그야말로 온갖 찌질한 짓을 하는 이야기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려던 무렵 드라마 ‘응답하라 1997’(tvN, 2012)이 나와서 그 아류로 보일까 싶어 한 해를 기다렸다 시작한 웹툰이다.

“찌질한 연애 얘기다 보니 제 고해성사도 많이 들어가요. 주요 인물인 네 친구도, 사귀는 여자들도 제가 가진 성격이 조금씩 담겨 있죠.” 애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는 밤샘을 거듭하며 한 회를 업데이트한 직후부터 다음 회 콘티 다듬기에 돌입한다. 스토리와 콘티는 그가 맡고, 그림은 대학 후배이기도 한 웹툰 작가 심윤수가 그린다.

 이제 그에게 만화는 “첫사랑이 아내가 된 것 같은” 존재다. 그럼 요리는? “글쎄요. 아직은 애인?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요. 좀 할 줄 안다고 제대로 배워봐? 그 순간 요리에 흥미를 잃고, 저와 동일시하던 수많은 자취인이 ‘김풍 변했네’ 할 것 같아요.” 마침 성희성 PD가 ‘김풍이 초심을 잃고 자꾸 욕심을 내는 것 같다’고 농담조로 한 말을 전하자 그는 짐짓 더 진지해졌다.

“막상 요리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게 돼요. 저는 악전고투하면서 허둥지둥 최선을 다하는데, 그래야 방송에도 재밌게 나오더라고요.” 그는 이름난 요리사 샘킴에 맞서 간단 요리 ‘자투리타타’로 승리를 거뒀을 때 “정말 기뻤다”고 했다. 반면 기성품인 매운 라면 소스를 이용한 홍석천의 요리에 패했을 때는 황망함을 맛봤다. “전문 셰프들이 나한테 지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그에게는 엄청난 맛의 자산이 있다. “어머니가 워낙 솜씨가 좋으세요. 어머니 음식 솜씨 덕에 간을 볼 줄 알게 된 거죠. 어머니도 잘하셨지만 외할머니는 더 잘하셨어요. 숭어 알에 참기름 발라가며 집에서 직접 어란을 만드실 정도였죠. 한과도 신선로도 다 집에서 하셨죠.” 그가 “요리 잘한다”는 칭찬에 머쓱한 표정을 지은 이유가 짐작이 간다. 그는 요리에서만큼은 아마추어의 미덕을 고집할 생각이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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