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R&D 47조원 투자 이젠 '글로벌 기술제국' 야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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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이 미래의 신수종 사업 찾기에 팔을 걷었다. 8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의 이같은 투자 결정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술 준비 경영'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R&D 투자 규모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향후 5년간의 투자액( 47조5000억원)은 지난 5년간의 두배에 달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나 IBM. 마쓰시타. 노키아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맞먹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지목해 집중 투자하기로 한 분야는 ▶고용량 메모리▶차세대 디스플레이▶이동통신▶디지털TV▶차세대 프린터▶시스템LSI(비메모리 반도체) 등이다. 이 중에는 기존 1위 자리나 1위 도약 가능성이 있는 제품 뿐 아니라 당장 수익성은 없더라도 유망한 분야도 여럿 있다. 특히 에너지와 광원(LED와 같이 빛을 내는 반도체 등)분야의 경우 2010년 이후 성장 동력을 제공할 유망 사업으로 삼성은 보고 있다. 환경 문제 등으로 이 분야의 대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판단해 미리 원천기술 개발에 힘을 쏟겠다는 뜻이다. 조선 분야에서도 크루즈선 등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한다는 전략을 마련했다. 메모리반도체.디스플레이.이동통신.디지털TV 등 이미 세계 선두권에 진입한 분야는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져나가도록 지속적인 투자를 하기로 했다.

삼성은 대규모 R&D 투자 방침을 밝히면서 "21세기 삼성 기술력의 핵심 화두는 기술혁신 역량과 원천기술 확보"라고 설명했다. 1960~70년대 '조립 및 생산효율', 80~90년대 '개발 스피드와 품질 개선'을 과제로 내세우며 성장했던 삼성의 기술혁신 과정이 기업 규모의 성장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선진기업형으로 바뀐 것이다.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인 이학수 부회장은 이날 "이번에 수립한 R&D 계획을 차질없이 실행해 세계가 놀랄 수준의 기술을 개발, 한국 경제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윤우 기술총괄 부회장은 "21세기에는 혁신기술로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R&D 투자와는 별도로 기초 기술개발 및 산학협력 연구개발에 4조원, 협력업체 경쟁력 강화에 1조2000억원 등 모두 5조2000억원을 향후 5년간 투입해 협력업체의 동반 성장과 산업 기반기술 육성을 지원할 방침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번 발표가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 등으로 가라 앉은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읽힌다. 협력업체와의 동반 성장이나 산학협력에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 본연의 길을 꿋꿋이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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