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관계 '밀월' 넘어 '밀착'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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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가 밀월을 즐기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양국 관계가) 지금보다 더 좋았던 때는 없었다"고까지 말했다. 양국 간 협력은 군사.우주에서 시작돼 교육.체육 등 일상 생활 분야로 번지고 있다.

◆ 에너지와 군사.우주 분야는 밀착 단계=3일 베이징에서 열린 원자바오 총리와 미하일 프라드코프 러시아 총리의 회담은 시종 웃음으로 넘쳤다. 홍콩 언론은 3일 "이견이 거의 없는 역대 최상의 총리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양국 총리 회담은 올해로 열 번째다.

회담이 끝난 뒤 원 총리는 "시베리아 송유관을 중국으로 연결하기 위한 협상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시베리아 송유관을 중국 북부 다칭(大慶)으로 연결할 계획이다. 양국 송유관이 연결되면 러시아 동시베리아와 카스피해, 극동지역의 천연가스와 원유의 중국 수송이 빨라지기 때문에 중국은 만성적인 에너지난을 덜 수 있게 된다. 러시아 송유관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둔 셈이다. 프라드코프 총리는 "중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러시아는 2004년 시베리아 철로를 통해 중국에 580만t의 원유를 수출했다. 올해는 이 물량이 8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8월의 성공적인 합동훈련으로 양국의 군사협력은 동맹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양국이 정기 합동 군사훈련에 합의했고 중국은 러시아제 무기 10억 달러어치 구매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달 중국의 선저우(神舟) 6호의 성공적인 발사 이후 우주협력도 본격화하는 추세다. 러시아 연방우주국의 율리 노센코 부국장은 지난달 31일 "2008 ~ 2009년으로 예정된 화성과 주변 위성 탐사를 중국 측과 공동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이 같은 사업들을 위해 경량급 위성을 공동 설계할 것을 중국에 제안했다. 중국도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인문 분야로 확대되는 협력=올해 총리 회담에서 양국은 경제.교육.위생.은행 등 8개 분야에서 합의를 봤다. 원 총리는 앞으로 러시아로부터 수입을 대폭 늘리겠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의 기계와 전기 관련 제품, 원자력과 항공, 우주 관련 설비의 수입을 늘릴 방침이다. 양국은 투자 확대를 위해 '중.러 투자보호협정'도 체결키로 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4일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 국영 브네셰코노 은행이 중국 국영 개발은행에 첨단 제품 생산 지원을 위해 2억 달러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10년 전 54억 달러였던 양국의 교역액은 지난해 212억 달러로 늘었고 올해는 22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인문 분야의 협력도 두드러진다. 두 나라는 상호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인적 교류를 늘리고, 각종 문화.체육 활동 증진 방안에도 합의했다. 특히 양국이 '공동 국가의 날'을 만들어 여러 가지 우호 활동을 펴자는 데도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

◆ 왜 이렇게 가까워지나=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강화가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특히 9월 대서양에 배치된 미국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9척 가운데 4척을 올 연말까지 태평양 연안으로 이동 배치할 것이라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양국 간 협력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24기의 트라이던트 미사일 발사대를 갖추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은 미 의회 소식통과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이 같은 전력 재배치는 무엇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일본 안전보장협의위원회도 공동 안보 전략에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계속되면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기 때문에 중국에 군사력 확장 정책 변경을 요구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앤 스콧 타이슨 군사전문기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지역 군사력 강화와 맞물려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동북아 안보와 평화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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