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디즈니는 가라, 이젠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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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PRINCESS MONONOKE)
수전 J 네피어 지음, 임경희·김진용 옮김
루비박스, 484쪽, 1만6500원

한때 미국에서 일본 만화영화는 '잽(JAP)애니메이션'이라고 불렸다. 일본(Japan)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다분했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아니메'라는, 애니메이션의 일본식 용어를 사용한다. '포켓몬스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알 수 있듯, 최근 10여 년 사이 아니메는 전세계 대중문화의 주요 아이콘이 됐다.

이에 대해 '왜?'라고 묻는다면 아직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한 사람일 것. 우리가 이제 던져야할 질문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이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일본 문화를 가르치는 저자는 그 대답을 한마디로 말한다. 미국 대중문화와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기존의 미국 대중문화는 사회전복적 경향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봉쇄하고 안정과 질서의 상태로 귀결시킴으로써 안도감을 주려하지만, 훌륭한 아니메는 이런 '이데올로기적 봉쇄'에 저항하고 봉합된 안도감 대신 열린 가능성이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얼마나 다른 걸까. 저자는 아니메의 바다에 종말론적.페스티벌적.애수적이라는 세 가지 그물을 던졌다(이는 일본 역사를 전공한 뒤 아니메의 특징을 역사.종교.미술사적으로 분석해 1996년 '외계에서 온 사무라이'를 펴낸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 안토니아 레비 교수보다 거시적이다).

이 그물에 잡힌 아니메의 실체는 이렇다. 우선 경쟁일변도의 사회 속에서 소외된 개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아니메는 원폭 같은 재난은 물론 정신적 붕괴와 병리적 참사 등 원초적 형태의 종말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둘째, 아니메에는 '놀이'와 '제의(祭儀)'로서 일본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쓰리'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마쓰리는 모든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거나 관습적인 억압을 몰아내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메는 그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셋째, 젊음.순수.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 이는 우리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니메는 일본적 색채를 '무국적'으로 탈색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런 아니메의 특징을 '변신'을 키워드로 풀어낸 것도 흥미롭다. 끔찍한 몰골로 변하는 '아키라'의 데쓰오에게서 사춘기 청년의 반항을, 온몸이 성기가 되는 '요시도시'의 마물에서 여성성의 변화를, 컴퓨터와 합체되는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로부터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읽어낸다.

저자는 "아니메가 보여주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변화무쌍한 상상의 세계는 오늘을 사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감정이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문화산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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