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쟁

상고법원 설치를 둘러싼 법리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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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지난해 12월 판사 출신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상고법원 설치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대법원의 사법정책자문위원회가 상고심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지 6개월 만이다. 홍 의원 등 168명이 공동 발의한 이 법안을 놓고 법조계와 국회에선 찬반 양론이 뜨겁다. 찬성 쪽은 현재의 대법원 체제로는 양질의 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상고법원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 법령 해석 및 통일이 필요한 사건만 대법관들이 맡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하창우 대한변협 신임 회장 등은 상고심 법원은 사실상 4심제로, 대법원의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대법관 수의 증원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상고법원 설치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봤다.

분쟁해결 위한 현실적 대안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의 사건처리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는 2006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10년 사이에 정권의 성향과 무관하게 상고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이 이번 국회에 상고법원 도입 법안을 제출한 이유는 과도한 사건 수로 기능이 약화된 상고심의 정상화를 통해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다. 1981년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상고허가제가 시행됐지만 국민의 ‘재판 받을 헌법상 권리’를 제한한다는 이유로 90년에 폐지됐다. 그 이후 상고사건이 폭증해 문제가 생기자 94년 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법원 접수 사건은 2006년 2만2946건, 2009년 3만2361건, 2014년에는 약 3만8000건에 육박한다. 2014년 기준 대법관 1인은 연간 3166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법령의 해석·통일이라는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의 권리구제 기능도 매우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급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최근 10년 사이 국회와 사법부가 중심이 돼 세 차례에 걸쳐 개선법안을 발의하고 논의해 온 것이다. 대법원의 업무처리 적체와 기능 약화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국민의 입장에서 대법원의 사건적체 개선의 필요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시점에 과반수 넘는 국회의원이 상고법원 도입 법안을 발의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상고법원의 도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가. 이를 긍정하려면 헌법적 정당성과 제도적 우월성이 있어야 한다.

 먼저 헌법적 정당성을 보면 헌법 제101조 제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설립되는 각급 법원인 상고법원은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권리구제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다. 대법원이 일부 기능을 상고법원에 위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국민의 권리구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최고법원 고유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일정 사건을 상고법원에서 처리하도록 분쟁해결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상고법원 도입은 헌법에 합치한 분쟁해결의 선택과 집중이다. 상고법원에 대한 위헌 주장은 국민의 실질적인 권리보호와 현실을 무시한 다소 무책임한 발목잡기다. 둘째, 제도적 우월성이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고법상고부제, 상고허가제, 심리불속행제를 실제로 시행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고법상고부안이 두 차례나 입법발의 후 폐기됐다. 대법관 증원 방안도 2010년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논의됐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제도상 상고허가제가 미국·독일·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이상적 방안이지만 이미 90년 폐지된 적이 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다시 시행하기는 어렵다. 또한 대법관을 사건 수 증가에 맞춰 증원하면 분쟁해결 구조의 최상층부가 비대해지고 전원합의체의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것이 명백하다. 대법관이 50명으로 늘면 국회 청문회가 1.4개월에 한 번씩 치러져야 한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상고법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제도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그에 대응하는 법무부·검찰 조직의 보완이 필수적이고 업무 효율성을 위해 대법원과 상고법원은 같은 지역에 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만 4심제라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고법원 사건의 대법원 이송이나 재심을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에서 대법원의 사건 적체를 해소해 대법원의 기능 정상화와 국민의 실질적인 권리구제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현실적인 대안은 상고법원의 도입이라 생각한다.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서 재판 받을 권리 부정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해 상고법원제는 국민을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대법원을 위한 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선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고법원제는 대법원의 재판을 받고 싶은 국민의 여망을 부정하는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통해 ‘대법원의 재판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국민의 마음속에는 이미 자신의 사건을 대법원에서 재판받고 싶어 하는 여망이 크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 1년에 3만6000건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건이 대법원에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엄청난 사건 수를 이유로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 처리를 대신해줄 상고법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이 있다. 이러한 상고사건 수의 폭증에 원인 제공을 한 당사자가 바로 대법원이라는 점이다. 법에 의해 대법원은 하급심의 법리 적용상의 오류를 따지는 법률심을 수행하게 돼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의 사실판단에 증거 채택이 잘못됐다는 ‘채증법칙 위반’을 구실로 사실판단에까지 관여해왔다. 그 결과 하급심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국민은 자연스럽게 대법원 재판에서 하급심 판결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고, 이러한 기대가 1년에 3만6000건이라는 상고사건 수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건 폭증의 원인 제공을 한 대법원이 상고사건 수가 너무 많으니 따로 상고법원을 만들어 달라고 나서는 형국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를 요구하기 이전에 앞으로는 절대 사실심에 관여하지 않고 법에 규정된 대로 법률심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둘째, 상고법원제를 도입하면 상고심 판결에 대한 국민의 판결 승복도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고 상고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 국민이 다시 대법원의 문을 두드리게 됨으로써 사실상 4심제로 심급제가 운영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론 대법원은 상고법원의 판결이 대법원에 오게 되는 ‘특별상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 그런 결과를 막을 것이라고 단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특별상고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미 엄청난 낭비다. 그리고 상고심 판결에 대한 국민의 승복률 감소는 법원 전체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상고법원제 도입은 우리 사법부의 병폐인 ‘사법관료주의’를 더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상고법원의 재판관들은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돼 있다. 우리 대법원장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권한이 너무 많아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될 정도다. 3명의 헌법재판관, 3명의 중앙선거관리위원에 대한 지명권을 비롯해 전국 모든 판사에 대한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장에게 상고심 재판의 권한을 가진 상고법원 재판관에 대한 인사권까지 쥐여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법관 위계 서열의 상층부에 ‘상고법원 재판관’ 자리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은 수평적이어야 할 법관 조직을 더더욱 수직화·서열화시킬 것이고, 이로 인해 심화된 사법관료주의는 법관들이 국민을 보고 재판하기보다 자신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 상층부를 보고 재판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끝으로 상고법원제 도입은 우리의 사법 구조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다. 따라서 법률 개정이 아니라 헌법 개정을 통해 시도해야 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고법원 설치를 통해 대법원이 정녕 소수의 중요 사건 심리에 집중하는 정책법원이 되고 싶다면 국민 각계각층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선결요건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