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고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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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며칠 전 친한 친구들끼리 모임이 있었다. 저마다의 생활에 쫓기느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만나는 순간 포근함을 느낄 정도로 고교시절 추억을 같이 나눈 친구들인지라 한층 정겹기만 하다.
이젠 시집가고, 아이 낳고, 주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아직도 혼자인 몸으로 학문에, 특정직업에 몰두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날은 새 소식이 있었다. 아직 시집을 안간 친구가 가을엔 결혼을 한단다. 너무나 갑자기 들려온 소식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고교시절부터 결혼은 절대로 안할거라고 맹세했던 것이 생각나 신기하다 못해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철없던 고교시절, 그 중에서도 고교2년 때인 18세 시절은 참으로 값진 추억의 장들이다. 입학시험의 부담과 신입생의 촌스러움을 떨치고 마냥 꿈에 부풀었던 18세. 우리 자신이 설계한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한 점의 두려움이나 주저함도 없었던 그런 때였다.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는 우리 모두의 왕자님이었고 H은행소속 실업야구팀을 응원하느라 손바닥은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우리는 「자존신」에 대해 서로 핏대를 올리며 논쟁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서관으로 달려가 한 테이블을 몽땅 접수. 세칭 「도서관파」가 됐다.
교정의 잔디밭에 누워 어둠이 밀려오는 하늘을 바라보기를 우리는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그 시절의 이야기로 그날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깔깔대며 웃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진실된 우리의 땀방울과 사랑만이 보배요 목표였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 그 시절 우리들의 슬로건을 되새겨보며 18세의 한 토막은 각박한 현실 속에 항상 웃음을 선사해주는 영원한 무지개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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