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조사하러 갔다 어려운 이웃 보면 쌀도 퍼다 주고 김치도 사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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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선자(62)씨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인구주택총조사 (11월 1~15일) 조사원 가운데 최고참이다. 1980년 처음으로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했고 이번이 여섯 번째다. 인구주택총조사가 5년에 한 번씩 실시되니까 햇수로 25년째인 셈이다. 그는 이번에 서울 관악구 봉천 6동 지역의 140여 가구를 맡아 조사하게 된다.

"해가 갈수록 조사가 어려워져요. 2000년 조사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에요."

80년대 초만 해도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엔 낮에 비어있는 집이 많은 데다 무인경비시스템을 갖춘 오피스텔 등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많다. 한 집에 한 가구가 살던 옛날과 달리 요즘엔 세대 구성도 복잡해졌다. 이혼.별거.독신 가구 등이 늘면서 사생활을 쉽게 밝히지 않으려는 것도 요즘의 추세라고 한다. 답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20년 전 10명 중 1~2명이었다면 최근엔 4~5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질문에 답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사생활이 순탄치 않다고 볼 수 있어요.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 구성원들의 삶도 복잡 다양해졌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구주택총조사는 국가 통계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정확하고 빠짐없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가 처음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했던 것은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였다.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한 그는 네 아이를 낳고 10여년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부터 자신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인구조사는 그의 첫 번째 사회활동이었다.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그의 삶도 달라졌다. 경찰서에 붙잡혀온 청소년 상담역을 10여년간 했고, 그 후엔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해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을 돕고 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알고 보면 끼니를 굶을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요. 인구조사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퍼다 준 쌀도 꽤 될 겁니다".

덕분엔 5년 전엔 '아들'까지 생겼다. 2000년 인구조사를 위해 방문한 가구의 세대주 중 한 명이다.

"갓 돌을 넘긴 아기가 분유가 없어 울고 있는 거예요. 당시 33세이던 아기 아빠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후 오랜 실직 상태에 있었고 명문 여대를 졸업한 아기 엄마도 직장을 못 구한 채 굶고 있었죠. 적십자회와 접촉해 5개월간 쌀을 타다 줬고 내 주머니를 털어서 분유니 김치 등을 사줬어요. 1년 후쯤 아기 아빠가 울산에 직장을 구했는데 지금도 '어머니'라며 전화가 옵니다."

최고 경력의 베테랑 조사원이다 보니 통계청이나 구청.동사무소 등에서도 조사하다가 막히면 그를 찾는다고 한다. 조사 대상과 연락이 잘 안될 때, 조사원들에게 불의의 사고가 터졌을 때 등이란다.

"조사원 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든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번엔 참여 안하려했었죠. 동사무소 측의 간청으로 다시 하게 됐어요. 다음 번엔 참여하지 않을 거예요. 일당 3만원이 아쉬운 청년 실업자들이 줄어든 다음에나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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