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8)|제80화 한일회담(17)|「특수지위의 국민」|유진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일본점령군최고사령부(SCAP)는 48년6월21일 정령을 통해 재일한국인을 「특수지위의 국민」이라고 모호하게 규정해 재일한국인들의 법적 지위에 관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이용한 일본경부의 태도를 뒷받침했다.
특수지위의 국민(Special Status Nations)이라 함은 일본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정적으로 일본국적을 이탈한 국민으로도 볼 수 없는 일종의 특이한 지위를 가진 국민이라는 뜻이다.
SCAP당국의 이 같은 규정은 피 점령국의 국민들에 대한 국제법적 선례 때문에 나온 방책이었던 것 같다.
즉, 1차대전의 강화조약인 베르사유조약은 독일 안에 거주하고 있는 폴란드·체코·유고인들의 국적은 원칙적으로 독일국적을 인정하고 본국국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폴란드나 체코 등은 해방당시의 우리와 마찬가지 입장으로 독일로부터 독립했던 것이다.
SCAP측이 비록 국제선례에 의거해 그랬다 하더라도 SCAP측의 조처는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던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의 정신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일본정부는 외국인 등록령에는 재일교포를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외국인 재산취득에 관한 정령에는 「일본인」으로 해석하는, 지극히 일본적인 재일한국인을 취급했다.
그 결과 재일교포는 패전 일본에서 일반 외국인이 갖는 특권적 지위를 인정 받지 못하면서 외국인등록은 해야되고, 자녀에게 의무교육을 시킬 수 없으며, 외국인에게 금지된 권리나 자격(예 광업권, 일본은행 주주권 등)은 금지되는 등 기묘한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정부는 SCAP에 대해 일본이 45년8월9일 포츠담선언을 수락한 날로부터 기산하여 일본에 계속 거주하고 있는 교포는 대한민국 국민이며 따라서 일본 안에서 외국인 대우를 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지척하고 오늘의 불안정한 상태를 시정해줄 것을 수차 요청했다.
나와 갈홍기 주일참사관도 이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SCAP측과 절충하고 재일교포의 국적문제에 관한 우리정부의 견해를 설명했다. 지금도 SCAP측의 법무관이 나의 설명에 대해 고개를 내젓던 모습이 선하다.
법무관은 정치적 주장은 어떻든 간에 법적으로 그 문제는 대일강화조약에 의해 결정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와 갈씨는 한국에 있는 한국인의 국적이 이미 법적으로 일본인이 아닌 이상에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 또한 법적으로 일본인이 아니고 외국인 (대일관계에서)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SCAP측은 이에 대해 정 그렇다면 SCAP은 이 문제에 관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으니 일본측과 교섭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한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뜻을 SCAP측은 서면으로 우리 정부에도 전달했던 것으로 안다.
대일강화조약비준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일본정부의 견해를 서촌외무성 조약국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국적은 이 조약에 아무런 규정이 없다. 조약초안의 이 문제에 관해 일본정부의 의견을 요청받았을 때 일본정부로서는 조약 제2조A항 규정에 따라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했다. 즉, 옛날에 존재했던 독립국이었던 한국이 독립을 회복한다고 하는 취지였다.
한국을 「조선」의 정통정부로 보는 것이며 재일조선일은 당연히 한국정부에 의해 대표되는 한국의 국적을 취득, 회복하는 것이다.』(51년10월20일 중의원특별위)
서촌의 답변으로 미루어 봐도 일본은 재일교포들을 한국국적인, 즉 외국인으로 보고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실제 그들이 처우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들 편리한대로 했던 것이다.
정부가 한일회담을 서두른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들 교포들의 처우 문제였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