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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정 ‘농축·재처리 금지’ 명시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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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이 7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올해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외교부는 “회담에서 양측이 몇 주 내에 최종적으로 원자력협정이 타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협상은 이르면 3월 타결될 예정이다. [사진 외교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이르면 3월에 타결된다. 새 협정에는 핵연료의 농축·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양국 소식통들이 전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독일 뮌헨안보회의가 열린 7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올해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외교부는 “회담에서 양측이 몇 주 내 최종적으로 원자력협정이 타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브리핑에서 “양측 모두 가까운 시일 내(in the near term) 협상을 끝내자는 강한 바람을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협상 타결 시점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타결 시한을 못박는 것은 전략상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서명 이후 정식 서명에 통상 1~2개월이 걸리고, 미국 의회 승인 절차에만 최소 90일이 필요하며, 최종 문구 조정 작업 등을 감안하면 협상이 타결되는 시점은 3월 중이라고 한다. 정부가 이미 전문가 조언 등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타결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현행 협정 만료기간은 내년 3월이다.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에 대해 협상 내용을 잘 아는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그간 다른 제3국과 맺은 어떤 협정과도 다른 창의적인 방식으로 협정을 맺으려 한다. 농축 조항도 금지나 일방적 통제 같은 이분법적 방식이 아니다”고 전했다. 특히 새 협정엔 ‘협의’와 ‘합의’의 의미를 강조한 새로운 표현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기존 협정처럼 미국의 사전 동의를 의미하는 ‘한·미가 공동으로 결정한다(jointly decide)’는 표현이 제외되는 건 물론이고 미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협정에서 쓴 골드 스탠더드도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론 농축·재처리에 반대하는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가 담길 것이라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우리 측은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한 연구개발 분야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는 사용후 핵연료에 손도 댈 수 없다. 정부는 또 수출 경쟁력 증진 등 실리를 챙기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그동안 산업계가 “원전이나 기자재, 핵심 부품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사전 승인이 필요한데 이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원자력 장비와 부품을 우리가 제3국으로 재수출할 때도 미국의 통제 절차가 적용된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절차 간소화를 요구해 왔으며 긍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새 협정의 기한을 어떻게 정할지도 관심사다. 여러 나라와 협정을 맺고 있는 미국은 최대한 협정 기간을 길게 하자는 입장이며 통상 30년을 주장한다. 우리 측은 원자력 기술 발전 속도 등을 감안하면 30년은 너무 길다는 입장이다.

 주요 쟁점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졌지만 돌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지난해 미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핵 확산 우려’ 등을 이유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이란 핵 협상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새로 상원 외교위원장이 된 밥 코커 의원은 모든 협정에 골드 스탠더드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다. 그는 지난해 미국과 베트남이 골드 스탠더드 조항 없이 농축·재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만 담은 협정문에 합의한 걸 문제 삼으며 “한국과의 협상에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막판 변수가 될 수 있다. 의회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미측 협상당사자들이 협정문의 문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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