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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기자의 전당대회 참관기] “문재인” 환호 12번 끌어낸 12개 질문이 승부 갈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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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한 박지원 의원(오른쪽)이 문재인 대표(왼쪽)의 당선이 확정되자 악수를 청하고 있다. 가운데는 이인영 의원. [김경빈 기자]

12개의 질문이 승부를 갈랐다.

 문재인 신임 당 대표는 후보당 9분으로 제한된 현장 연설에서 ‘○○할 사람이 과연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총 12번 던졌다.

 “다시는…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적할 수 있는 강한 당 대표를 원합니다. 누가 그 사람입니까.” “차기 대선 지지율 1위, 누구입니까.”

 연설을 시작할 때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오른쪽 귀퉁이에서 작은 소리로 시작된 “문재인”이란 답변은, 12번 되풀이되는 동안 점점 커져 대회장을 뒤흔들었다. 그가 “우리 당을 이기는 당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제가 대선 때 받았던 그 뜨거웠던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며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 올릴 땐 거대한 함성으로 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는 문 대표의 연설이 끝난 오후 2시30분쯤 결정됐다는 평가가 대세다. 비노로 분류되는 박영선 의원조차 “여기서 이 정도 환호가 나오면 무조건 문 후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45%를 차지하는 대의원들의 현장투표를 앞두고 문 대표 측은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다. 대의원 투표(문재인 45.05%, 박지원 42.66%) 결과가 달랐다면 승자는 당원들 투표에서 우세한 박 후보였을 게다.

 이날 현장을 찾은 1만727명의 대의원은 대부분 마음을 정하고 왔다. 하지만 야당 전당대회에선 현장 연설로 인해 작게는 5%, 많게는 10% 이상 즉석 변동표를 만든다는 게 정설이다. 당 관계자는 “문 대표의 연설이 부동표를 흡수하는 한편 이인영 후보 쪽 표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밖에선 ‘그들만의 리그’라는 혹평을 했지만 후보들은 사투를 벌였다. 문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면서 전대에 걸린 ‘판돈’은 커졌다. 박 후보는 이날 마지막 연설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까지 거론하면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투석을 시작했고, 저는 감옥에 갔으며, 13번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고, 제 눈도 이렇게 됐다”고 했다. ‘친노 프레임’으로 장내의 호남 출신 대의원들을 움직이려 한 전략적 발언이다. 당권·대권 분리론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문 후보 혼자 대표도 하고, 혼자 후보도 하면 누가 ‘총선 드림팀’에 함께하겠느냐”고 물었다. 박원순·안철수·안희정·김부겸 같은 당내 차기 주자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의 전략은 당초 ‘미스매치’로까지 불리던 승부를 박빙구도로 몰고 갔다. 현장에서 만난 대의원 박용규(53)씨는 “대선 후보까지 하더니 당 대표까지 가져가려고 해? 우리에겐 안철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이런 견제심리를 차단한 게 막판 문 대표가 친 배수진이었다. 문 대표는 이날 “제게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습니다. 이번에 당 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저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고 호소했다. 현장에선 “대통령후보까지 한 사람을 낙마시킬 순 없지 않으냐”(대의원 이재호씨)는 반응이 또 하나의 흐름을 이뤘다. DJ가 만든 연청 출신인 김태상(60)씨는 “문재인이 안 되면 당이 망한다”고까지 했다. “민심과 그렇게 다른 당이 생존할 수 있겠느냐”면서다.

 현장 연설의 성공은 문 대표가 비전을 말해서일 수도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 견제 ▶계파 갈등 종식 ▶총선 승리 ▶정권 교체를 말했다. 노련한 박 후보의 공세를 버텨 낸 결과가 대선 고지 앞으로 조금 더 다가간 것인지, 단순히 정치생명만 연장한 것인지는 앞으로 문 대표가 어떤 길을 걷느냐에 달렸다. 공교롭게 그가 받아 든 시험지는 박근혜 정부의 그것과 비슷하다. 비노와의 ‘소통’, 집토끼가 아닌 산토끼를 겨냥한 실사구시 ‘정책’의 생산, 통합·탕평의 ‘인사’를 해내느냐 여부가 결국 그를 죽게 하거나 또는 살릴 것이다.

글=강민석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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