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없이 암환자 통증 완화 … 항암 효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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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를 끝까지 괴롭히는 것은 암세포가 아니라 ‘통증’이다. 통증이 심할 때는 죽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한다. 문제는 현존하는 진통제가 부작용이 심하고 내성이 있는 ‘마약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암 환자의 60~70%는 통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최근 부작용과 내성이 거의 없는 비마약성 진통제 출시가 임박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3일 비소 화합물을 이용한 암성 통증 치료제(코미녹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국내 제약기업 코미팜의 양용진(사진) 회장을 만나 글로벌 신약 개발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코미팜은 동물용 의약품을 전문으로 연구개발하는 회사다. 구제역 백신 등 동물용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30여 개 제품을 러시아·체코 등 25개국에 수출한다. 동물용 의약품을 개발하던 노하우는 인체 의약품을 연구하는 밑거름이 됐다. 화이자·바이엘 같은 글로벌 제약회사도 코미팜처럼 동물용 의약품을 연구개발한다.

그는 “2001년부터 비소 화합물 코미녹스의 안전성과 항암·진통 효과를 차례로 확인하고 본격적인 신약 개발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비소 화합물은 독성이 강해 비상(砒霜)이라는 사약으로도 사용했다. 본래 비소(As)라는 원소 그 자체는 독이 없지만 산소나 염소·황 등 다른 물질이 결합하면 독성이 생긴다. 그는 코미녹스가 체내에서 다른 물질과의 결합 가능성을 없애 독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확보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통증 분야 권위자인 호주 퀸즐랜드대 마리 스미스 교수팀이 암성 통증 작용 메커니즘과 치료 효과를 규명했다.

기존 진통제는 통증을 뇌로 전달하는 신호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했다. 뇌로 전달하는 신호를 차단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원리다. 반면에 코미녹스는 프로스타글란딘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 작용한다. 통증을 유발하는 효소가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해 통증 발생을 차단한다.

그는 호주 NSW 국립암센터 데이비드 커로 박사팀과 함께 암성 통증 완화 효과를 점검하고 있다. 양 회장은 “올 3분기에는 호주에서 정식으로 코미녹스 시판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미팜은 호주에서 판매허가 승인 직전 단계인 특별공급 정책으로 코미녹스를 호주에 공급하고 있다. 만일 코미녹스가 호주에서 시판 승인을 받는다면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암성 통증 치료제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 약은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항암효과도 있다. 정상적인 세포는 50번 정도 분열하다 자연사한다. 세포 끝부분에 있는 ‘텔로미어’라는 세포시계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죽는다. 암세포는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도록 하는 효소인 텔로머라이제를 만들어 무한 증식한다. 코미녹스는 텔로미어가 정상적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앤다. 치료효과가 좋은 담도암·혈액암·간암을 대상으로 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한양대병원 등에서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양 회장은 “코미녹스는 암성 통증을 완화하면서 동시에 항암 치료효과를 지닌 신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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