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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추령에 소군수뇌 3명 관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KAL기 격추까지의 경과가 소련군부의 몇갈래 경로를 통해 발표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 명령계통은 확실치가않다. 누가 어디서 격추명령을 내렸는가에 대해서 소련군참모총장 「오가르코프」는 『관할지구사령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렸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런 수수께끼같은 소련군부의 지휘계통에 대해 서독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 차이퉁지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련군지도부 세사람의 수뇌가 KAL기격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이들 3명의 인물이 직접 관련됐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모스크바로부터 가장 먼저 이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소련방공사령부참모부장 「세미온·로마노프」대장이다. 그는 9월5일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를 통해 미국의 「정치적 도발」로서 KAL기가 스파이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9일 참모총장인 「오가르코프」가 기자들앞에 나타난다. 「오가르코프」원수는 KAL기의 격추경위를 직접 설명하며 『세계어느나라의 참모부이건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보고받게 마련』이라고 말해 자신이 결정과정에 개입됐음을 인정했다.
같은날 국방상 「우스티노프」는 한 연설에서 극동에서 『인명을 고려하지 않은 명백한 스파이행위』가 소련군에 의해 추적됐음을 시인했다.
9일 「오가르코프」의 기자회견에서 핵심이 되는 질문은 그가 미사일발사명령을 받은것은 언제였고 누구로부터 받았는가? 당서기장 「안드로포프」에게도 소식이 전달됐는가등등이었다.
「오가르코프」는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지도자들이 이문제에서 언급되는 것을 피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주 분명하고 엄격한 계통』이 방공사렁부에 있다고 말했다. 발사명령은 2시간반동안의 추적끝에 극동의 『지역사령관에 의해』내려졌으며 모스크바에서는 『계통에따라 올바른 시각에』보고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상황이 어떻게 진행돼가는지를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중앙에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소련군사피라밋의 상층부는 국방성의 군사회의다. 국방상 「우스티노프」를 필두로하여 참모총장 「오가르코프」, 정치장교「예피스체프」대장및 「빅토르·쿨리코프」원수(바르샤바군사령관)와 「세르게이·소콜로프」원수가 있다.
모스크바에서 KAL기에 대해 가장 먼저 보고받은 인물은 방공사령관인 「알렉산드르· 콜두노프」였을 것이다.
올해 59세의 「콜두노프」는 78년이래 방공사령관직을 맡고있다.
프라우다에 처음 KAL기의 격추사실을 시인했던 「세미온·로마노프」는 「콜두노프」휘하의 참모부장이다.
소련방공부대는 육군·해군·공군및 전략미사일부대와 아물러 5개군사령부의 하나로서 1954년부터 독립된 기능을 갖고있다.
따라서 「작전지휘와 통제」는 모스크바의 사령부에서 수행된다는게 서방측의 견해다.
극동군관구의 사령관은 올해 60세인 「이반·트레티아크」대장이다. 그는 76년부터 이자리를 맡고있다. 「트레티아크」의 참모로서 극동군부대사령관인 「고보로프」대장이 모스크바와의 연락을 맡았을 가능성이 많다.
「트레티아크」와 「고보로프」는 모두 소련군수뇌부와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알려진 인물로 모스크바로부터의 허락없이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렸을것으로는 상상할수없다.
두사람 모두 공산당중앙위위원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소련에서 군사지배체제와 정치지배체제를 명확히 분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브레즈네프」말기의 여러해동안 소련군부는 계속 당지도층에 진출해왔다.
KAL기사건을 두고 소련공산당지도부가 군인들의 뒷전에 앉아 입을 다물고 있는것도 이런 사정때문으로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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