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요즘 '도둑과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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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 사는 임중철(76)씨는 20일 새벽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마을 근처 도로변에 펼쳐 놓고 며칠째 말리던 벼 40kg들이 100포대(450만원)가 밤새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임씨는 "이렇게 많은 양의 벼를 도둑맞은 것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수확철 농민들이 농산물 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벼를 진공흡입기까지 동원해 몽땅 가져가는 등 절도범들의 범죄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찰과 농민들은 농산물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수법도 가지가지=충남경찰청에 따르면 9월 말부터 최근까지 충남 지역에서 벼 도난 사건은 10여 건에 이른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절도범은 진공흡입기를 이용해 말리는 벼를 싹쓸이하거나 나락 밑에 깔아놓은 천까지 통째로 들고가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도둑들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벼를 훔치기 위해서 진공흡입기를 사용한다"며 "흡입기는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흡입기와 연결된 저장탱크로 벼가 곧바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로 돼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이모(64)씨는 최근 야산에 심어놓은 장뇌삼 1만여 뿌리를 모두 도둑맞았다.

?도둑 막기 비상=풍기인삼의 주산지인 경북 영주시 각 지구대 소속 경찰관 100여 명은 3~4명씩 조를 편성, 인삼밭 주변에서 날마다 잠복 근무를 하고 있다. 청도경찰서는 관내 도로 12곳에 설치된 CCTV에 전용 조명등을 달고 있다. 농산물 절도에 주로 이용되는 차량의 번호를 식별하기 위해서다.

충남경찰청은 도로 위에 벼를 말리는 농민들을 방문, "도난 방지를 위해 밤에는 벼를 수거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경남 창녕경찰서는 최근 방범용 CCTV 21대를 주요 길목에 설치했다.

인삼을 재배하는 김모(28.충남 금산군)씨는 최근 400여만원을 들여 인삼밭에 센서(감지기)를 설치했다. 인삼밭에 사람이 들어가면 센서에서 나오는 레이저가 감지한다. 센서는 김씨 집 전화기와 연결돼 있어 도둑이 침입하면 전화벨이 울린다. 인삼밭 입구에 200여만원 상당의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 날마다 잠을 자는 농민도 있다. 영주의 인삼농가는 일당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야간에 불침번을 서며 인삼밭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인삼밭에 개를 매 놓은 농민도 상당수다.

홍권삼.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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