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격추는 크렘린지시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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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측의 KAL기격추는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였기 때문에 서방전문가들은 초기에 「안드로포프」의 서방접근에 대한 군부의 반발이 이런 행동으로 나타난게 아닌가하는 이른바 「음모설」이 나돌았다. 「안드로포프」는 이 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전에 미국이 서구에 퍼싱·크루즈미사일 배치계획을 포기한다면 유럽에 배치된 소련의 SS-20미사일을 스스로 파괴하겠다고 제의했었다. 군부는 그런 소련측 양보를 막기위해 KAL기를 민간지도층에 조회하지않고 격추했다는 것이 이 음모설을 뒷받침하는 가설이다. 그러나 이제 서방이나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분석가들은 다같이 이 음모설을 배척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11일 보도했다.
소련이 의식적으로 민항기를 격추하지 않았다는 소련측 해명을 받아들일 경우 소련이 KAL기를 격추한 과정에는 소련군의 엄격한 명령계통, 지휘관들의 미숙, 통신체계의 미비등이 얽혀있는것 같다고 뉴욕타임즈지는 11일 보도했다.
이기사는 서방 군사전문가의 말을 인용, KAL기를 추적한 소련 당직자는 국제 민항 시간표를 통해 그시간에 해당지점을 통과할만한 민간여객기를 조사하지 않았고 하바로프스크와 삿뽀로의 지상통제소간에 설치된 교신망을 이용해서 이 KAL기의 정체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전문가는 KAL기를 추적한 소련 요원이 하바로프스크와 삿뽀로간의 전화를 쓸수 있도록 허가받은 요원과 즉시 연락이 되지 않았거나 그 요원의 전화번호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소련 장교들은 긴급상황에 대처할 훈련이 부족해 미리 하달되어 있는 원칙 밖의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고 모스크바의 한 외국 무관은 평했다.
여기에다 지난 수년동안 영공에 들어온 외국항공기를 놓친죄로 장교들이 처형당한 선례가 KAL기격추를 명령한 지휘관의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고 뉴욕타임즈지는 추측했다.
지난 9일과 10일 소련은 군부최고 지휘자와 KAL기를 격추시킨 조종사를 내세워 최대의 선전활동을 했는데 두사람의 말이 서로 맞지않아 허위를 스스로 드러내기도 했다.
소련 참모총장 「오가르코프」는 KAL기가 「한 밤중에 구름이 끼어 시계가 좋지 않은 상황」속을 비행해서 여객기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는데 소련전투기 조종사는 7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큰 비행기」를 봤다고 말했다.
또 「오가르코프」는 소련전투기가 위협사격을 가한후 KAL기가 『도망가려했다』고 주장했으며 미국측이 공개한 조종사와 지상관제탑 간의 교신내용속에는 KAL기가 『고도를 높이고 있다』고 조종사가 보고하는 부분이 있는데 TV에 등장한 소련조종사는 KAL기가 위협사격을 받은후 『같은 항로, 같은 고도로 비행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즈지의 군사전문가 「드루·미들턴」은 11일의 해설기사에서 미국이 KAL기를 첩보용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없다고말했다.
그는 인공위성이 1백마일 상공에서 찍은 사진으로 소련 순양함의 볼트까지 식별할수 있고 길바닥에서 행인이 읽고있는 신문의 제호가 「프라우다」라는것까지 판별할수 있었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소련의 주요기지 치고 촬영안된게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첩보 비행기RC-135가 KAL기로 하여금 소련 레이다 망을 작동케하는 「미끼」로 이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한 공군장교는 가능성은 있지만 있을법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이 기사가 전했다.
이 장교는 소련 레이다시설은 이미 RC-135에 의해 위치파악이 되었으며 인공위성 촬영도 되어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미국과 나토전문가의 말을 인용, 서방측이 여러가지 첨보수단을 갖고 있으면서 쉽게 포착될수있는 보잉747여객기를 첩보용으로 동원하리라고 소련군사령관이 진실로 믿는다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결론지었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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