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노선’ 달리는 호남KT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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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개통하는 호남고속철은 서대전역을 거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호남고속철도 운영계획을 발표하며 “신선(新線·오송~공주~익산)을 지나가는 KTX만 호남고속철”이라고 6일 정식 명명했다. 그렇다고 서울 용산을 출발해 서대전역을 통과하는 KTX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루(주말 기준) 18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손병석 철도국장은 “호남고속철의 건설 취지를 존중하면서 승객의 수요를 함께 고려한 조치”라며 “호남과 충청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묘안을 짜느라 고심했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 발표안에 대해 호남과 대전·충남 지역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서대전역 경유를 요구해온 대전·충남 지역은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중심으로 집단 반발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충청과 호남의 상생 발전에 저해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비해 호남 지역은 대체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철도 운영의 합리성을 따지기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식으로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다”고 지적했다. 호남 여론을 의식해 신선에 호남선이란 이름을 붙이고 기존 선은 서대전역을 지나 익산에서 연결을 끊었다. 또한 대전·충청 여론을 염두에 둬 기존 선엔 18편을 남겨뒀다.

 문제는 국토부의 이런 정치적 고려로 인해 이용자 편의나 철도의 체계적 운영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점이다.

 우선 호남선의 경우 속도는 평균 2시간48분에서 1시간49분으로 빨라지나 실제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KTX 편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기존 62편에서 68편이 된다. 이 때문에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시간대를 제외하면 실제 운영 편수는 편도 기준으로 한 시간에 채 두 대가 안 될 것”이라는 게 코레일의 설명이다.

 대전·충남 지역 이용객들은 당장 불편을 겪는다. 광주광역시 등으로 가려면 익산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 대전에 사는 주부 이윤경(41)씨는 “친정이 광주인데 앞으로는 새마을호를 타든가 익산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 철도전문대학원 교수는 “코앞에 신선이 있는데 열차를 멈추고 갈아타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철도 네트워크의 효율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국토부의 안은 호남선KTX가 서대전역을 경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말장난”이라고 꼬집었다.

 호남선 KTX는 탄생부터 정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호남고속철도 건설계획을 세웠다. 당시 분기점을 천안에 설치할 것이냐, 오송에 설치할 것이냐를 놓고 해당 지역 간 갈등이 빚어졌다.

이번엔 서대전역 경유를 놓고 호남과 충청 지역 간 갈등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국토부의 이번 발표가 지역 갈등을 종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호남지역에서도 호남선 KTX를 반기는 여론만 있는 게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광주 광산갑) 의원은 “이번 국토부의 발표는 지난 1월 코레일이 계획한 20% 서대전 경유 안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꼼수 중의 꼼수이자 수도권과 호남권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겉으론 호남이 당장 득을 보는 것 같지만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같기 때문이다.

김한별·윤석만 기자, 광주·대전=최경호·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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