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파이 파산'에 국내사 빛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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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0년 넘게 미국 GM에 윈도 레귤레이터(창문을 아래 위로 여닫는 장치)를 납품하는 경북 경주 소재의 광진상공은 내년 수출액을 올해보다 1000만달러 늘린 5000만달러로 잡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업체인 델파이의 파산으로 GM의 주문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전체 매출액(1300억원 규모)의 35%를 미국에서 벌어들였다.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들이 '델파이 파산'으로 뜻밖의 기회를 잡고 있다. 실제로 경영이 썩 좋지 않은 미국의 유명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들이 경비절감 차원에서 한국산 부품을 구매하거나 한국기업에 투자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트라(KOTRA)가 이달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한국 자동차의 날'행사에서 로버트 보쉬, 아빈메리토 등 42개 유명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은 중국에 이어 2위의 투자대상국으로 뽑혔다.

또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 3의 구매담당자들은 한국을 아웃소싱 최우선 대상국 지목했고 보쉬 등 미국에 공장을 둔 외국의 부품업체 중 74%가 한국에 대한 신규투자를 추진중이라고 답했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시장규모와 성장 잠재력▶ 주변시장에의 접근성▶ 숙련된 노동력과 생산성 등을 한국 부품시장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부품수출도 힘을 내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의 대미 수출액은 올 들어 9월까지 14억55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나 급증했다.

한준우 코트라 정보조사본부장은 "델파이 파산 이후 처음에는 미국의 자국산업 보호방침이 더 거세져 한국업체에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근 분위기는 이와는 다른 모습"이라며 "이 흐름을 잘 활용하면 수출증대와 투자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영세한 부품업체들의 모듈 생산 능력이 부족한 만큼 이 분야의 기술개발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조합의 한 관계자는 "최근 자동차 부품 시장이 모듈 생산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며 "모듈생산은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순 부품 생산업체들은 모듈 생산업체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재편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일부 외국업체들은 한국의 높은 인건비와 강성 노조 등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어 외국 부품업체의 한국에 대한 투자가 실제 이뤄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윤창희.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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