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움직인 2인의 도망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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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명성그룹의 안팎에서 돈줄을 움직여온 사채놀이의 두주역 박대성씨(37·명성자금담당상무)와 박기서씨(61·사채중개인)는 구속중인 김동겸씨(38)의 「비밀장부압수」정보를 비상연락망을 통해 입수하자마자 잠적한 것으로 밝혀졌다.
명성사건의 열쇠를 쥔 박상무는 지난6일하오4시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아 마산으로 줄행랑을 쳤고 사채중개인 박씨는 지난6일 뉴욕에서 귀국했다가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박대성씨는 아침일찍 회사에 출근했다가 6일하오4시쯤 집에 잠깐 들렀다. 박씨는 초조한 모습으로 집에 들러 『염려하던 일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며 현금과 옷가지 등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자신이 평소 타고다니던 서울1가2691호 로열레코드 승용차를 차고에 그대로 두고 조모씨(35)가 운전해온 서울3라4104호 은색 피아트 승용차를 직접 운전, 황급히 떠났다는 것이다.
그후 부인김일지씨(38)도 마산으로 내려가 남편을 만났으며 13일 두사람이 함께 상경하여 박씨만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
부인 김씨는 남편의 행방에 대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 소재수사가 진전을 못보고 있다. 박씨의 도피는 김철호회장부부의 잠적과 거의 때를 같이해 수사관계자는 박씨의 소재를 알고있는 연락책이 명성그룹안에 있을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박씨에 대한 수배전통이 떨어진 것은 박씨잠적 5일만인 11일하오10시쯤.
경찰은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있는 박씨검거에 1계급특진을 내걸었다.
박대성씨는 회사내부에서도 「미스터리의 인물」로 통할만큼 많은 것이 가려져있는 실력자.
김철호회장이 용인의 오성골프장을 인수했던 지난79년 상업은행에서 명성으로 전직, 김회장이 가장믿는 「자금마련의 하수인」이 됐다. 구속된 김동겸대리와는 상업은행 입행동기로 의형제를 맺은것을 백분활용, 김철호회장과 김동겸대리 사이의 통로구실을 했다는 것.
박씨는 상무이사이면서도 회사에는 아침에 잠깐 얼굴을 비친 뒤 하루종일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하오 늦게야 귀사, 잠깐자리를 지키며 메모 등을 체크하는 정도여서 그룹내부에서도 『박상무는 김회장만이 아는 사람』으로 불려졌다. 박씨는 또 정기적인 중역회의는 물론 김회장이 긴급히 소집하는 확대간부회의에도 참석하는 일이 드물어 간부들 사이엔 『회의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으로 시기의 대상이었다고.
그는 젊은 나이에 비해 말수가 적고 행동이 무거워 점잖은 사람으로 비쳤으나 갈수록 회장의 신임을 믿고 교만한 티가 드러나 동료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왔다고.
박씨의 고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82.
지난6월11일 현재 살고있는 50평짜리 아파트로 이사왔고 부인 김씨와 사이에 1남을 두고있다.
또 다른 도망자 박기서씨는 세무사찰이 시작된 후인 지난달30일 돌연 뉴욕에 갔다가 6일 귀국했다. 박씨는 귀국하자마자 사방에 전화를 걸고 명성사건의 추이를 제나름대로 점치다 밤늦게 도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짐보따리를 챙겨7일 다시 뉴욕으로 빠져 나갔다는 것이다.
박씨는 작년에도 네차례나 해외나들이를 해왔고 그가 사용한 여권은 상용여권 제025895.
경찰은 박씨가 상당한 외화도 소지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27일 이례적으로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수배를 의뢰했다. 박씨는 3, 4년전부터 사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거물급 사채중개인. 박씨는 노련한 화술과 정확한 정보, 완벽한 보안 둥 3박자를 고루 갖추고 3년6개월동안 9백71억원의 사채를 동원, 「명성」왕국과 전주들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박씨의 정체는 보원교역(서울 충무로1가 은정빌딩8층)과 보원농장(경기도 이천)의 대표.
보원교역은 이탈리아 등지에서 고급가구용 대리석을 수입, 가공해 판매하는 회사지만 실제엽적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박씨의 사채중개 연락처로 이용돼왔다.
부장 1명에 사원 6명인 이 회사는 박씨가 해외로 도피한 후 형식적으로 출근을 하고있지만 완전히 허탈한 분위기.
보원농장이 있는 경기도이천에서는 박씨의 평판이 좋은 편이어서 지난 5월엔 이천청년회의소로부터 「지역사회 번영에 공로가 있다」고 하여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박씨의 집안은 황해도재령부호로 알려졌다.
박씨는 금년초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명성」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미국으로 도피한 것 같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
박씨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60평, 내부장식과 가구는 거의 외제. 박씨는 옷장 등 가구를 수입한 대리석으로 꾸몄고 길이1m의 전화기받침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룬다. 각방엔 일제소니비디오 3개 세트가 있고 침대도 이탈리아제품.
박씨의 아파트는 지난2월 보원교역 이름으로 서울신탁은행 충무로지점에 3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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