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는 말뿐…겉도는 「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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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불교조계종 신흥사 승려 살인사건 수습이 무명을 나지 못한채 사분오열의 혼미만을 거듭하고 있다.
불교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든 신흥사사건은 불법전파의 전당인 청정도량 (사찰)이 「살인장화」했다는 호된 비난을 받기까지한 전대미문의 한국불교 치부였다.
따라서 사건수습은 1차적으로 전불교계의 처절한 참회와 더불어 조계종단의 현체제가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통감하고 「총사퇴」해야한다는게 1천2백만 불자와 국민들의 여론이다.
그러나 총퇴진으로 참회의 양심을 보여줘야할 총무원과 종회는 여전한 「술수」와 아집의 명분을 앞세워 종권다툼의 핑퐁놀이를 되풀이하고있다는 불교계 일각의 비판조차 없지 않다.
물론 양측은 모두 퇴진촉구의 불꽃이 죄어들자 각기의 조건부 퇴진결의를 표명했다.
다음으로는 50년대말 대처승축출불교정화의 찌꺼기들인 승단의 폭력과 비리를 떨어내는 「제2불교정화」가 단행돼야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불교정화의 핵심 내용은 혁명적인 불교제도의 개혁과 문제 승려의 도태-.
신흥사사건을 계기로 크게 자극된 이같은 불교계 내외의 열망은 지난19일 종단사태수습을 위한 임시종회의 개막과 함께 행동화되면서 뜨겁게 불타올랐다.
총무원집행부와 종회의 총퇴진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 「새출발」을 강조한 이성철종정의 종회 교시, 1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학인승려들의 구종시위가 그 대표적인 실례들이다.
사태수습을 둘러싼 혼미는 크게 네갈래로 갈라져있다.
첫째는 재야의 「즉각 총사퇴」와 현체제의 조건부 사퇴가 맞서있다.
둘째는 총무원과 종회의 자체 퇴진결의가 한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총무원은 종단풍토 쇄신후의 퇴진과 승려대표 사회인사로 구성된 불교개혁위원회를 통한 종단제도 개혁, 현체제 참여자의 3년 공권정지를 주장하는 반면 종회는 9월20일까지의 무조건 퇴진, 수습대권의 원로회의 위임등을 주장했다.
다음은 총무원과 종회자체의 결의마저 통일을 기하지 못하고있다. 종회는 20여명의 의원만이 사퇴서를 냈을뿐 나머지(15명정도)는 태도미정이고 총무원의 경우 2명의 부장이 사표를 제출한채 출근을 않고 있다.
끝으로 총퇴진과 개혁압력의 전면에 나선 각승려단체·신행단체등의 수습대안 역시 백가쟁명이다.
이같은 혼미속의 가장 예리한 대립쟁점은 ▲즉각퇴진 ▲공권정지 ▲개혁추진 대권의 담당자(기저)결정문제등이다.
기정사실화 될수밖에 없는 퇴진인데도 절차문제라는 새끼줄을 잡고 우왕좌왕하는 조계종의 사태수습은 이제 다음 3가지 방안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을것같다.
제1안은 총무원과 종회공동의 총퇴진및 공권정지 결의-종정에게 수습대권부여-새총무원 집행부구성-불교개혁위구성-개혁단행의 길이다.
다음은 무조건 즉각사퇴-불교개혁위설치-개혁단행-종단정상화의 방법-.
제3안은 과거의 예에 비추어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즉각사퇴-원로회의중심의 수습및 개혁추진이다.
퇴진절차는 진정한 참회의 자세로 모두가 목소리를 가다듬는다면 1시간이나 하루안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무릇 종교단체란 세속이 선망하는 도덕성과 윤리성·양심을 갖는게 특징이며 불교근본교리가 생명경외의 자비사상이란 점에서 신흥사사건은 현종권 담당자들의 인책퇴진이 자명한 「상식」일수밖에 없다.
더욱이 사건의 근원적 배경이 총무원대 종회측 종권다툼의 연장선상에 뿌리를 두고있다는 점에서도 양측은 도의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는게 정평이다.
한국불교는 이제 승단의 폭력난무와 「꿩잡는게 매」라는식의 철면피한 종권쟁탈전을 우선적으로 뿌리뽑아야한다.
대처승정화당시는 「비상수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작태가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현 총무원과 종회가 해야할 일은 오직 종단법통을 단절시키지 않는 「절차」를 밟아 즉각 퇴진하는 것뿐이다. .
신흥사사건은 결코 종권찬탈의 기회로 이용돼서도 안되고 지상명제인 제2불교정화를 외부에 내맡기는 백기항복의 무기력을 자초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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