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짓기 통해 상의 응집·언어 절제 갖춘후 연수를|『학』 『수박』…깔끔하나 호흡단락·의미 전달이 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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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시조는 단수에서 시작하여 단수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 문학적 성과면과 창작 실제상에 다같이 적용되는 말이지만, 더우기 후자에 국한해서 볼 때 그것은 가식없는 진리다.
이른바 「명시조」를 많이 낳아 널리 회자(회자)되는 이영도선생(l916∼1976년)은 평생에 걸쳐 이미 발표한 자신의 작품들을 부단히 개작하는 일에 남다른 열심을 기울임으로써 갖가지 얘깃거리를 남긴 시인이기도하다. 그의 그 개작작업의 중점은 바로 기왕의 연수 작품을 단수로 바꾸어 놓는데에 주어져 있었다. 여기,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왁자히 울었다가 그쳤다 다시 울다.
밤이 기울수록 겨워지는 저 소리
갈댓잎 달 그림자도 까닥하나않는다.
아무도 울 이 없어도 무엔지 그리운 이 밤.
눈을 감아도 잠은 아니 오고
무수한 저 소리 속에 내 소리를 듣는다.
이『개구리』라는 작품은 그의 첫시집『청구집』(1954년)에 실린 것이었는데 그로부터 14년뒤에 나온 두번째 시집『석류』(1968년)에는 그것이 다음과 같이 한수짜리로 탈바꿈해 있엇다.
아무도 울 아 없어도/무엔지 그리운 밤을
쉬어가며 생각나듯/울어대는 개구리.
애끓는/그 소리 속에/내 소리가 들린다.
한말로, 상의 회축과 언어의 절제에 한껏 안간힘을 쓴 자취를 똑똑히 읽는다.
이 교훈을 다들 슬기롭게 받아들여야할줄 안다. 우선은 단수를 빚으려는 의지부터 단단히 가져 주었으면 한다. 벌여놓기(확산)보다는 거둬모아다지기(용집)가 어렵고 낭비보다는 절제가 어려운 법이다. 단수짓기를 통한 상의 용짐과 언어의 .절제능력을 온전히 갖춘 뒤라야 연수시조에의 진정한 발돋움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하나의 극명한 이치인 것이다.
이번 회에 선보이는 『여름밤』과 『아들 결혼』은, 일단 연수로 꾀한 데에 따른 타당성 이 엿보이기는한다. 그러나 그 상의 크기에 견주어 부피가 얼만큼 늘어나 있는데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도 더러 잡힘은 숨길수가 없다. 『학』과 『수박』은 깔끔한 태깔의 단수들. 앞의 것은 호흡의 단락이 보다 자연스러웠으면 좋겠고, 뒤의 것은 의미전달이 보다 수월했으면 좋겠다.
『검정고시』는 아직 어린 솜씨인채로 그 티없는 육성이 진하게 와 닿는다.
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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