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만한 근련이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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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날 제자둘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공자가 물었다. 『모두 평소에 자기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는데, 만약 인정받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할 작정인가? 어디 한번 기탄없이들 말해보게나』자로가 제일 먼저 대답했다.
『저는 내우외환으로 고생하는 소국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주위의 대국들로부터는 침략당하고 국내는 기근에 고생하고 있을때 저는 백성에게 의와 용을 가르쳐서 3년이내에 나라안팎을 편안하게 만들어 보겠읍니다

<자기를 인정받을때>
다음에는 재유가 대답했다.
『저는 더 작은 나라에서 일해도 좋습니다. 3년이면 백성들의 살림을 윤택하게 만들 자신이 있음니다. 예·악에 의한 교화까지에는 미처 힘이자라지 못하겠습니다만』이어 공서화가 대답했다.
『자신이 별로 없읍니다만 종묘의 제사나 제후의 모임때에 예장하여 말단접대역을 맡을 수는 있을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 이 대답했다.
『저의 소망은 훨씬 더 작습니다. 봄이 한창일때 진솔 봄옷을 입고 문밖에 산책나갑니다. 젊은이며 아이들과 어울려 냇가를 거닐다가 봄 바람을 맞으며 노래를 부르다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듣자 공자는 나직이 탄식하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내가 하고싶은 것도』
논어에 있는 얘기다. 공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만큼 완미한 도학자는 아니었다.
꽃잎이 한잎 두잎 날고 있다. 님이 그리워 못견디지만 워낙 이집이 멀다는 민요에 대해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정도로는 덜 반한 것이다. 정말로 그리워 못견디겠다면 천리도 1리만큼 가깝다』
이렇게 풍류를 알고 레저를 즐길줄 알면서도 공자는 끝내 그러지를 못하고 말았다. 공자는 만년 실업자였다. 따라서 마음 놓고 레저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놀이를 즐길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세월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인정을 받은 다음에 제일 먼저 하고 싶다는게 봄놀이라면 자못 이상하게 들리지만 할일 다한 다음에는 놀이나 하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혹은 공자도 보통사람들 처럼 아무거리낌 없이 기분풀이를 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한탄한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보연 공자가 좀더 인간다와 진다. 불쌍하게 보이기도 한다.

<서민은 비참한건가>
「파스칼」도 『팡세』에서 기분풀이(Divertissement)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하고 아무리 근엄한 임금이라 할지라도 기분풀이라는게 없다면 결국은 한낱 비참한 인간에 지나지않는다고 여겼다.
『인간이 죽음이라든가 비참한 운명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가령 사냥을 하는 동안 기분이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 이래서 사람들은 틈과 여유만 있으면 들로, 산으로 기분풀이를 찾아나선다.
그래야 따분한 삶도 잊고 또 내일에의 에너지도 찾는다. 나같은 불완전 실업자도 친구의 꽁무니에 둘어서 바캉스길로 나선다. 그리고 기왕에 크게 마음먹고 떠난 길이라면 충분한 기분풀이를 하고 몰아오기를 누구나가 바란다.
며칠전 설악산의 어느 휴게소에서 겪은 일이다. 해발 8백30까의 풍치에 도취되다 그만 피워서는 안될 파이프를 피워 물었다. 한 모금 맛있게 연기를 내 뿜었다하는 순간에 어디선가 한 청년이 달려와서 삿대질이었다.
『당신 지금 어느나라 담배를 피웠소?』 『피웠소?』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피웠읍니까?』 하는 공손한 물음은 결코 아니었다.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또 다른 청년이 나타나서 으름장을 놓았다. 『선생, 증명서를 내시오』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신분증 비슷한 것을 살싹 번쩍이고는 뭐라 적혀있는지를 미처 읽어볼 겨를도 주지 않은채 다시 호주머니에 넣였다.

<안하무인의 인간들>
후박말에 순열이 쓴 『신전』 에 보면 나라에 큰 병이 네가지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하나는 국정에 거짓이 많아진다는 「위」와 또하나는 사리사욕만을 채우려는 「사」가 있다. 그리고 방자하여 법을 무시한다는 「방」과 사치에 흐른다는 「사」가 있다.
물론 그것은 권력층을 두고 한 말이지만 나역시 변명의 여지없이 「방」과「사」의 두가지 우를 범한 셈이다. 무슨 힐난이라도 달게 받아 마땅한 몸이었다. 할말을 찾아 머무적거리는 사이에 또 다른 청년이 나타났다.
『그럼 당신 찻속을 수색해도 좋겠읍니까?』 하며 당장이라도 찻속에 뛰어들어갈 기세였다. 순간 「카프카」의 『번간』 에서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이 주인공을 개잡듯이 죽이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만약에 남의 찻속을 마음대로 수색할 권한이 있다면 족히 남의 집안에도 뛰어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네 단속원은 그런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데 완전히 도취되어 있는 듯 했다. 그들은 꼭 극악범인이라도 다루듯이 흥분되어 있었다. 감히 그들에게 수색의 권한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무슨 벼락이 떨어길지 알수 없었다.
그러기를 몇분. 그러자 한 단속원이 나를 사무실로 끌고가서 벌과금을 즉석에서 물지 않으면 조서를 꾸미겠다며 조서용지를 들춰보였다. 벌과금을 물고나자 그들의 태도는 일변하였다. 『요새 하루방 맛이 참 나쁘죠』하고 한 단속원이 나의「범죄행위」에 동정한다는 듯이 말했다. 꼭 병주고 약주고 하는 투였다. 그는 이어 『다음부터는 밖에서는 피우지 마십시오』하고 말해주었다.
밖에선 피우지 알라는 것은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차라리 호되게 세금을 부과해서라도 양담배를 자유롭게 피우게 하지 않느냐. 그토록 많은 단속원을 쓸수 있을 만콤 여유가 있다면 왜 좀 더 정성스레 담배를 만들도록 힘쓰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못만드는게 아니다. 「하루방」도 처음 나왔을때에는 제법 피울만했던 것이다.

<한 노점상인의 자살>
돌아오는 찻속에서 벌과금의 가납영수증을 훑어보니 밑바닥에 『귀하가 가납하신 금액이 국고에 납입되었는지의 여부를 전화로 확인할수 있읍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전화의 번호는 아무데도 적혀있지 않았다. 뭔가 크게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그제서야 당초에 느꼈던 뉘우침과 죄의식은 엉뚱하게 분노로 변하고 이어는 또 다른 야릇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것은 「기분풀이」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동안 묵은 신문들을 들춰보니 낙점단속반에 떼밀려 정신병증세를 일으킨 한 노점상 여인이 병원에서 자살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사회가 권력지향적일때에는 모든 사람이 되도록 권력에 업혀살고 권력을 내세우려한다.
조선조때 상민들을 괴톱힌것은 원님보다도 아전들이었다. 조선조사회를 폭력사회로 만든 것은 실로 그들의 쥐꼬리만한 권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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