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한국농업, 생산비 팍 줄여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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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협상인준이 늦어지면서 쌀협상안과 농업대책을 세운 농림부는 여러가지로 어려울 것으로 본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고민할 때는 어디 있다가 다 세우고 나면 딴소리를 하며, 대책을 내놓으라고 소란을 부리니 말이다.

농림부가 UR과 DDA에 대비하여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예산당국에 사정을 구하면서 119조 투자계획을 발표하였다. 그 계획안에 보면 현란한 아이디어가 총 집합되어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방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 본인은 그 계획을 작성하신 분들께 미안하지만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농림부

농림부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 농림부가 소비자의 입장에서만 정책을 펴고 생산자의 고충을 외면한다면 농림부는 더 이상 농림부가 아니다. 농림업분야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설립된 부서가 생산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일 수는 없다.

최근 농림부가 '우리농업 희망찾기'라는 정책공모를 온국민을 대상으로 하는데 거기에는 3개의 큰 분야가 있다.

1) 농정신뢰회복 (여기에는 참여농정, 화합농정, 농업의 공익적 가치 제고와 홍보, 소비자 지향의 농정추진 방안 등)

2) 농산물 안전성 확보정책

3) 도농 상생을 위한 농촌 복합생활공간 조성방안

농림부가 희망이라고 말하는 3개 분야에 농업이 빠져있다. 참여농정 운운은 무얼 뜻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소비자를 지향하는 농정이라는 것이 부각된다. 농산물 안정성에서는 국산이나 외국산이나 공통의 문제이고, 도농상생을 위한 복합생활공간이라는 것도 농업과 어느정도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119조라는 예산이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기획된 것으로 안다. 농업정책을 포기하고 농촌정책과 농민정책을 한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농림부 정책의 초점이 이런 것이라면 농림부의 주요업무를 망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생산비절감에 한계, 고품질 생산으로 승부

2004년 정부는 6정보 이상의 쌀전업농을 7만호 양성한다고 발표했다가 이 말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떻게 농민이 규모화될 수 있는지 시행방법이 막연하다라는지 아니면 6정보가 되더라도 도시인의 소득을 따라갈 수 없다는 등 매우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최소한 규모화를 통해 우리 벼 시장의 절반만큼이라도 지켜내려는 착안을 한 담당자는 매우 곤란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그러나 본인은 구조조정이야 말로 농업개혁, 농업대책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그 방법에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 사례를 든다. 중국에 농촌인구가 많지만 공업 등 농업외 일거리도 많아지고 그곳의 벌이가 좋아지면서 중국은 기계화를 이루기도 전에 농촌에 인력난을 겪고있다. 이런 가운데 어떤 지역에서는 작은 땅을 가진 이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마을에 젊은이들에게 일임하였다. 이들은 대규모 기계화를 시도했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농사짓는 것에 비해 훨씬 수익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각자 농사짓는데 비해, 기계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고, 농자재도 싼 값에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고, 이 논 저논으로 기계를 가지고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 것이다. 결국 수익을 각자 제공한 땅의 면적과 제공한 노동력을 가지고 재분배하는 영농주식회사가 탄생된 것이다. 이런 형태는 우리 농촌에서 현재라도 가능한 일이다. 쌀전업농이 어떻게 6정보를 살만큼 자본을 마련할 수 있을까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논은 그대로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농사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 소수에게 몰아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럿이 일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이 얻는데 왜 반대하겠는가?

고품질 생산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일부의 대책이지 전반적 대책일 수 없다. 우리 농업의 가장 큰 문제가 쌀 개방이다. 2004년까지는 우리 쌀 시장의 4%(가공용 쌀 시장의 규모) 를 수입하고 정부가 벼를 수매하였기에 문제가 커지지 않았다. 이제 수매를 폐기한 올해 정부는 소득보전을 약속했지만, 농민은 쌀을 팔 곳이 없고, 쌀값 하락도 정부가 예측한 것에 비하여 커져서 쌀을 수매할 곳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 결과 정부가 소득보전으로 준비한 예산보다 많이 지출되어야 할 것이며 119조원 대책에 변경 불가피)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다. 앞으로 10년간 현재의 4%에서 의무수입량이 8%로 늘어나는 도중에 분명히 우리의 쌀 생산비가 시장의 쌀 값 정도로 낮아지는 순간이 올 것으로 보인다(생산비는 물가상승으로 인상되고, 관세등은 더 낮아질 것이므로). 이런 순간에 우리 쌀 생산은 82% 자국 생산량이 갑자기 0%로 떨어질 것이다.(물론 국내에서 가격 경쟁력 있는 아주 일부, 예를 들어 현대서산농장은 벼를 생산할 수 있다) 즉 생산비절감을 게을리 하면 정말 치명적인 벼 생산 감소를 초래하고 우리는 고가에 웃돈을 주면서 외국 쌀을 사들여야 하는 형편이 된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생산비절감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3. 소득보전으로 농민문제를 해결한다.

농민에게 소득보전을 통해 불만을 없애겠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된다. 일하지 않는데 보상을 준다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에 맞지 않으며, 설사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이라 하더라도 소득보전이 아닌 다른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쉽게 말해 누구를 지원할 때, 돈이나 식량을 지원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갈 방법이나 도구를 지원할 것인가? 도시와 농촌의 소득괴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갑자기 도시수준으로 맞추어 줄수도 없고 언제까지 농민에게 소득보전을 해줄 것인가? 소득보전은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하는 효과만 있을 소모성 투자이다. 생산적 투자방법을 강구해 내야 한다.

4. 농촌관광으로 농촌을 활성화한다.

농업이 나무의 뿌리라면, 농촌은 기둥이고, 농민은 가지의 잎과 같다. 그위치가 달라져도 상관없다.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처럼 이들 셋은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각각은 분명히 다르다. 농업이 없는 농촌은 미개발지의 소규모 촌락이고, 농업이 없는 농민은 단순노동자에 불과할 것이다. 더 이상 농이라는 단어를 쓸 수가 없다. 농업이 망해가는데 농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농촌관광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농촌관광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현상으로 본다. 선진국의 예들이 그것이다. 프랑스나 미국, 일본 다 농촌관광이 활성화되었다지만 그들의 소득은 우리의 2-3배가 넘는다. 국민소득 1만불을 넘은 실정에서 3만불, 4만불 국가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도입하여 농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기발한 발상이지만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수행은 부작용만 낳는다. 농촌의 관광자원이 미흡한 가운데 전국 팔도가 지방축제로 떠들썩 하지만 그것이 농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졌다는 보고는 본 일이 없다. 자연스럽게 올 일을 미리 외치고 투자하면 오히려 잘 될 일마저 망칠까 두렵다.

5. 유기농업을 잘하면 소비자가 국산품을 애용해 줄 것이다.

최근 중국산 김치파동으로 많은 농민이나 사회인들도 우리 농업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도 느꼈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중국산 김치파동은 중국의 배추생산 기술과 능력의 문제이기 보다는 저렴한 김치를 만들어 수입하려는 김치수입업자들이 일으킨 문제일 뿐이다. 중국의 유기농산물은 우리보다 그 역사가 깊고 제도도 더 발달되었으며, 시장규모도 훨씬 크다. 이미 유럽과 일본, 미국에에 중국은 유기농산물을 수출한다. 중국에도 고품질 유기농산물이 얼마든지 있다. 저들이 낮은 가격에 고품질 농산물을 들고 나타날때, 우리에게 남은 대책은 무어란 말인가?

앞에서 말한 5가지 모두가 하나로는 대책이 안되어도 합쳐지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농림정책의 핵심이 되는 "농업생산비경쟁력"을 빼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요즘 만능농업문제 해결책으로 부상한 유기농업이라는 것도 대책이 아니다. 이것 역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몇년안에 지금의 쌀처럼 혹독한 시련의 대상이 될 것이다. 구구단을 못하면서 미적분을 할 수는 없다. 최소한의 기초체력이 있어야 기술을 습득해도 쓸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디지털국회 이중용]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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