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여객기 납치범 판결문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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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이사건 공소사실중 피고인들이 운항중인 항공기를 납치하면서 승무원들에게 상해를 가한 부분에 대하여 이는 외국인인 피고인들이 중공소속 항공기가 중공대련시 상공을 통과할 무렵 그 기내에서 범한 것으로서 이른바 외국인의 국외범에 해당한다 할 것인바, 외국인의 국외범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형법 제5조에는 위 항공기운항안전법 제9조 위반의 죄가 포함되어있지 아니하고, 또한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인 항공기내에서 범한 범죄 및 기타행위에 관한 협약(도오꾜협약) 및 항공기 불법 납치억제를 위한 협약(헤이그협약)에 의하여 곧바로 우리나라에 착륙국으로서 재판권이 생기게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므로, 결국 이 부분에 대하여는 우리나라가 피고인들에 대하여 재판권을 가지고있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1호에 의하여 공소기각의 판결이 선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권력이라는 의미에서의 주권, 즉 통치권의 일부인 재판권은 주권의 영토고권으로서의 성질에 비추어보아 원칙적으로 영역안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에게 미친다고 할 것이므로 우리나라 영역내에 있는 피고인들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재판권이 미치게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나, 다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형사재판권이 행사되려면 우리나라의 형사법이 피고인들에게도 그 효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한다고 할 것인바,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재판권이 없다는 변호인들의 위 주장은 피고인들에 대하여 의율기소된 항공기운항안전법이 피고인들의 이 사건납치 치상행위에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 즉 항공기운항안전법의 적용범위에 관한 주장이라 할 것이므로 아래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그 주장내용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살피건대, 항공기운항안전법 제8조는 폭력 또는 협박, 기타의 방법으로 운항중인 항공기를 강탈하거나 그 문항을 강제하여 납치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고 이러한 납치행위는 그 성질상 폭력 등을 사용하여 실행에 착수한때부터 납치상태가 종료할때까지 범죄행위가 계속되는 계속범이라 할 것이며, 한편 같은법 제9조는 납치행위의 기회에 납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납치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행사된 폭력 등으로 인하여 치사상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 이를 가중처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같은법 제8조에 대한 결과적 가중범의 형태로서 납치행위와 치사상행위가 결합되어 1개의 구성요건을 이루고 있는 것이므로 납치로 인한 치사상의 결과가 발생한 뒤에도 납치행위가 계속된 경우라면 그 납치행위는 기히 발생한 치사상 행위와 함께 포괄하여 같은법 제9조 납치치사상죄를 구성하는 것이고, 따라서 치사상 이후 계속된 납치행위도 납치치사상죄의 범죄실행행위의 일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건기록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이 사건항공기를 납치하면서 치상의 결과를 방생케 한후에도 우리나라 영공을 넘어서 춘천시소재 비행장에 착륙하여 승객·승무원들을 관계기관아 인도할 때까지는 동항공기를 강점하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며, 이에 의하면 우리나라 영역내에서도 항공기운항안전법 제9조의범죄실행행위의 일부인 납치행위가 이루어졌음이 명백하고, 범죄실행행위의 일부가 국내에서 행하여졌으면 그 범죄행위 전체를 합하여 국내범으로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이건납치상행위는 국내범으로서 형법 제8조, 제2조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형사법인 항공기운항안전법이 적용된다 할 것이다.

<위법성의 문제>
피고인들 및 그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공산주의체제하의 중공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자유세계로 탈출하기로 결심하고서, 해외여행이 극히 제한되어있고 육로나 해상을 통한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불가피하게 항공기납치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며, 또한 실행과정에서도 조종실로 들어갈때 일부 승무원들로부터 예기치 아니한 저항을 받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다리부분에 발사하여 반항을 억압한 외에는 권총으로 승무원들을 위협하기만 하는 등 필요한 최소한의 폭력만을 행사한바, 이러한 탈출행위는 정치적 망명에 해당하고 세계 각국은 정치적망명을 위법시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와같은 목적의 정당성·수단·방법의상당성에 비추어 피고인들의 항공기 납치행위가 자유·정의·인도주의를 표방하고있는 우리나라의 전체 법질서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결국 위법성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항공기의 교통기관으로서의 특수성, 항공교통의 대형화, 대중화의 추세 등에 비추어 볼때 항공기의 불법적인 납치, 점거행위는 규율위반행위 등 통상의 기내범죄와 달리 선박·육상교통기관에 있어서의 유사한 행위와는 비교가 되지 아니할 정도의 높은 위험성을 수반하게 되고, 이러한 행위는 승객·승무원의 인명과 재산의 안전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항공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되며, 나아가 세계인류의 필수적인 교통수단인 항공의 존립자체마저도 그 근저에서부터 위협하는 결과로 되고, 따라서 이제 항공의 안전·정확·능률의 확보는 사회체제·국가체제를 넘어서 인류전체의 공동관심사가 되었다 할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항공기의 불법납치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국제조약의 체결과 이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연유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승객·승무원들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 항공활동에 대한 인류의 신뢰감 등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항공기납치행위는 어떠한 이유로서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 범위내에서는 개인의 권리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의 이 사건 납치행위도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전체 법질서에 반한다고 할 것이고 위법하지 아니하다는 피고인들과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할 것이다.

<정당방위 또는 긴급피난이라는 주장>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이건 치상행위부분에 대하여피고인 탁장인과 강홍군이 조종실문을 열고 들어갈 때 예상외로 승무원인 왕영창·왕배부가 도끼와 목봉을 들고 머리부분을 내려치는 등 급박한 침해를 가하므로 피고인 강홍군이 자신과 탁장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이러한 위난을 피하기 위해 왕영창 등의 다리에 총격을 가하게 된 것으로서 피고인들이 정한 행동수칙, 충격부위 및 총상의 정도, 생명을 걸고 자유세계로 망명하고자 했던 점등에 비추어 침해행위를 피하기 위해 위와같이 방위행위를 함에 있어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므로 결국 이 부분은 정당방위 내지는 긴급피난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 피고인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살피건대, 일건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 탁장인·강홍군·왕염대 등이 비행기를 납치할 의도로 총격을 가해 출입문을 파손하고 조종실을 점거하려고 침입하자 동항공기의 항법사인 왕배부, 무선사인 왕영창은 조종실내에 있던 도끼와 목봉을 들고 난입하는 탁장인·강홍군에게 대항하게 된 것으로서 이는 이른바 위법한 도발행위에 의하여 유발된 행위로서 그 자체가 정당방위로서 적법한 행위라 할 것이므로 이에대한 정당방위란 생각할 수 없고, 또한 위 인정과 같이 피고인들이 미리 납치를 계획하고 총기를 준비한 점, 조종실에 침입한 방법, 기타 납치당시의 상황 등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들은 위와같은 반항을 미리 예상하고 납치목적을 달성함에 장애가 될 경우 총격을 가해서라도 이를 제압하고 납치목적을 달성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임이 명백하고 방위의사 또는 피난의사로서 상해를 가하였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이점에서도 정당방위 내지 긴급피난이 성립될 수는 없다할 것이다. 결국 이점에 관한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의 주장 역시 이유없어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작량감경>
피고인들은 아직 나이가 젊어 장래가 있고, 승무원들의 반항을 제압함에 있어서 인명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일 뿐만아니라 결과적으로 항공기가 지상에 무사히 착륙하였고 승객들은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된점 등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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