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7살의 소년역사 허병호는 88서울올림픽의 꿈나무다. 그는 시종 선제공격으로 소련선수를 밀어불였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주니어 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선 82년에 노경선이 금메달을 딴 적이 있어서 통산하면 두 번째 금메달이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 따낸 금메달은 다른 의미가 있다. 이 대회 그레코로만형의 첫 금메달이란 점이다.
물론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이 우리에게 아주 낯선 경기는 아니다. 지난 2월 제22회 메라컵 국제대회 때 방대두 선수가 플라이급에서 우승한 바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레코로만형이 자유형 경기에 비해 덜 익숙한 것만은 사실이다. 자유형에선 벌써 장창선과 양정모가 금메달을 안겨준 적도 있다.
한국 레슬링은 그 동안 스피드를 이용한 태클을 주무기로 하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자유형에 치중해 왔었다.
체력, 특히 상체의 힘이 우세한 간헐의 선수들과 맞싸워 승산이 적었던 그레코로만형이 외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선입관은 지금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인은 체력싸움, 특히 상체의 힘에서도 서양인들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레코로만형은 그리스, 로마시대에 유행한 레슬링이란 뜻이다. BC 50년께부터 AD 4백년 까지의 기간이다. 꼿꼿이 서서 상대방을 넘어뜨린다고 해서 수직형(어프라이트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상대방의 배꼽 아래는 잡을 수 없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이 고전형 레슬링은 BC 3천년 전에 시작되고 있다. 고대이집트에서 따.
나일강가 베니 하산의 고분벽화에는 레슬링 장면 조각이 수백 개나 있다.
학자들은 레슬링이 이집트나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그리스로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는 「오뒷세우스」와 「아작스」레슬링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몸에 기름을 바르고 출장하는 정식 스포츠로서의 레슬링은 BC 7백년께 시작됐다.
올림피아드의 레슬링 종목에는 서서 하는 레슬링과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서서 하는 레슬링은 5종 경기에 채용되었으나 판크라티온은 거기서 제외됐었다. 서서 하는 레슬링은 스포츠로서 인정되지만 판크라티온은 역시 야만적이라고 본 모양이다.
그때 서서 하던 레슬링이 지금 그레코로만의 원형이다.
그러나 상고계아시아인의 씨름은 서양의레슬링에 못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소련의 삼보, 일본의 스모도 레슬링의 일종이다.
우리의 씨름도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구려 고분엔 씨름하는 벽화가 있는 각저총 도 있다.
중국인들은 우리 씨름을 고려기라고 했다. 고구려인의 용력은 그때도 꽤나 드날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서양씨름 레슬링에서 우리의 용력을 과시하게 되는 것도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