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법원, '코드'에 집착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대법원장이 3명의 새로운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제청 내용을 보면 대법원장이 그동안 관행화되어 있던 법원 내부의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학교와 출신 지역 등의 안배를 통해 외형상 균형을 맞추려고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여러 비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내년에 예정된 5명의 대법관 인사와 함께 짜일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야말로 상반된 가치관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법원의 본질적 역할은 국민 개개인의 분쟁 사건에 대해 법관의 판결로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여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 법원은 다른 국가기관이나 사회적.정치적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적 권력이어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법원은 무엇보다도 인적 구성의 독립이 요체다. 따라서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얼마 전에 있었던 미국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지명에 대한 뜨거운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대법관 제청에 대한 비판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먼저 법원 내부에서 더 강하게 제기된 '서열 파괴'는 온건.보수적이라고 인식되는 법원에 있어 신선한 변화의 시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서열'을 안일무사, 보신주의, 비능률 등과 같이 단순히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접근이다. '서열'에 내재된 의미 속에는 '법적 안정성'과 같은 법치국가의 본질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법관 개개인이 튀는 판결을 통해 과열 경쟁을 하는 것은 사건 당사자의 권리보호는 물론이고 사법적 정의와 법치국가의 실현에도 역기능을 할 우려가 매우 크다. 특히 대법원이 다루게 되는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인생과 세상에 대한 연륜이나 경륜이 올바른 사법적 시각의 기초가 된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른바 '코드 인사'에 대해서도 선거에 의해 선택된 집권세력과 노선을 같이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원이 행정권과 의회 권력으로부터 엄격하게 독립되어야 한다는 권력분립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나아가서 법원의 노선 변화는 널리 국민 대다수에 의해 확인되는 정책적 노선과 일치해야지 일부 특정 정치집단의 사람, 내 사람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사항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현재 청산이 논의되고 있는 법원 내부의 어두웠던 과거의 시발점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집권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낮은 지지율을 고려한다면 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인사 행태다. 그렇게 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과 대법원장이 정치적 코드에 집착한다면 권력분립의 근간을 해칠 것은 자명하다. 비록 형식적으로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와 대등한 삼권 중의 하나로서 독립적으로 구성되고 활동해야 한다.

따라서 내년에 있을 대규모의 대법관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인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선정 기준으로는 정치적 압력을 포함한 모든 외압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이다. 특히 시민단체를 비롯한 특정단체와 정치권이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 구성에 직접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고 위헌적인 발상이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대 교수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