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재판 … 양분된 이라크·아랍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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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할라브자 사람들도 마을회관에 모였다. 후세인이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며 판사를 꾸짖는 장면이 나오자 주민들이 얼굴을 붉히며 "당장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1988년 후세인 정권의 독가스 공격으로 이 마을에서만 5000여 명이 숨졌다.후세인의 고향 분위기는 정반대다. 중북부 티크리트에서는 재판이 시작될 무렵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이번 재판이 불법이라며 시위를 벌였다.

19일 후세인 재판을 두고 이라크는 이렇게 갈렸다. 이라크뿐만 아니다. 중동의 거리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카이로 시내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가혹한 독재자의 말로를 보고 싶다"며 은근히 자국의 상황을 빗대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번 재판을 반미(反美) 시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이 급조한 법정에서 아랍 대통령이 재판을 받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자지라.알아라비야 방송에 나온 인터뷰들도 대부분 그랬다.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이 부당한 방법으로 이라크 전쟁을 정리하려 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재판에 대해 아랍권 언론들은 대체로 '만만찮은 공방전'으로 전망했다. 세인과 미국, 이라크 정부가 각각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다툴 것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후세인 기 꺾은 아민 재판장
쿠르드족 출신 … 공정 진행 박수

"나는 이라크 대통령이다…도대체 당신은 누구냐."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은 19일 자신에 대한 첫 재판에서 판사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리즈카르 아민(48.사진) 재판장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담(Mr.Sadam), 이름과 직업을 말해주시죠." 긴 독설이 나올 것 같았던 분위기는 금방 진정됐다. 아민 판사가 첫 재판의 기 싸움에서 승리한 셈이다.

이번 재판에서 아민 판사는 후세인 다음으로 TV 조명을 가장 많이 받았다. 침착하고 깔끔한 진행과 미소 띤 얼굴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흰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침착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후세인 변호인단 대표 칼릴 알둘라이미조차 "훌륭한 재판 진행이었다. 흠 잡을 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라크 동북부 술라이마니야주 출신 아민 판사는 그동안 미국이 임명한 판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뒤늦게 그가 박수를 받고 있다. 후세인 지지 세력의 테러 보복을 두려워해 나머지 네 명의 판사는 TV에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피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 더 많은 이라크인의 박수를 받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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