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매제 폐지…쌀값 24%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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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남 나주시 문평면 수확기에 접어든 들녘. 한 농민이 벼 수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수매가격이 예년보다 가마당 약 1만원 정도 하락한 시즘에 농민들의 표정이 울상이다. 농민들은 수매제 부활 등을 요구하며 공공비축제 수매에 거의 응하지 않아 미곡처리장도 한산하기만 하다. 양광삼 기자

"농사일이 힘들긴 해도 벼를 수확할 때는 생기가 돌았었는데…."

18일 오전 전남 화순군 도곡면 월곡마을 들판.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던 양조승(51)씨는 "나락 값이 많이 떨어져 기가 막힌다"며 한숨을 쉬었다.

1만6000평의 벼 농사를 짓는 그는 정부 수매 등으로 벼 가격이 40kg당 5만4000원 선이 유지된 지난해는 4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3000만원도 채 안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부터 정부의 쌀 수매제가 폐지된 가운데 수확기를 맞아 한꺼번에 쌀이 출하되면서 쌀값이 가파르게 하락, 농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전남 나주시 문평면에서 5000여 평의 농사를 지어 40kg 포대 200여 가마를 수확한 이상근(47)씨는 "개인이 알아서 판매하라는 식이어서 친척들에게 부탁하고 정미소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생산량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이와 관련, 농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18일 현재 전국 40여 개 시.군에서 농민들이 20여만 가마를 시.군청 앞 등에 야적하고 수매제 부활과 쌀 협상안 국회비준 거부 등을 요구하고 있다. 18일 오후 경남 마산시 진전면 임곡리에서는 최모(46)씨가 한국농업경영인 경남도연합회원 200여 명과 함께 수확을 앞 둔 논 400여 평에 불을 질렀다. 그는 "농약.비료 값에다 가족 노동력까지 감안한다면 수확해 봐야 오히려 손해"라며 "정부의 쌀 정책에 항의하는 뜻에서 논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쌀값 폭락=미곡종합처리장에서 시가로 매입하고 있는 산물벼 가격(40kg 기준)은 5일 4만5000원이었으나 18일 현재 4만1000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에 5만4000원 선에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24%가 하락했다.

전남 담양군의 농협 미곡처리장 간부는 "예년 같으면 쌀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며 창고에 보관해 오던 농민들까지 올해는 수입 물량 등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투매에 가담하면서 쌀값 폭락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개인 미곡종합처리장과 도정업자들이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상황에서 쌀값이 더 내려갈지 모르는데 서둘러 사 둘 필요가 있겠느냐"며 매입에 소극적인 것도 쌀값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운영 광주.전남협의회의 박만선 회장은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른 정부 매입량 감소와 시가 매입에 따른 쌀 수급 불안, 수입 쌀 시판 예정 같은 요인이 겹쳐 쌀 시장이 혼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수매제 폐지=정부는 수매제를 폐지하는 대신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는 한편 매입가격을 시중가격으로 바꿨다. 수매제 때는 수매가격이 시중가보다 높아 쌀값을 지지해 줬으나 이런 기능이 없어지면서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산지 쌀값 하락 때 수확기의 전국 평균가격과 목표가격의 차액 중 85%까지 보전해 주는 소득보전직불제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회의적이다. 수확량이 적은 수도권이나 강원지역과 달리 영.호남지역 등은 산지가격이 전국 평균가를 밑돌아 그만큼 손실 보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창환 기자 <chuncw@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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