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빠' … 아버지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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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수씨는 1500일간 육아일기를 쓰면서 2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딸도 아빠와 사진 찍는 걸 즐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엄마는 누구 거냐고 물으니 채은이 거라고 말하길래 아빠는 누구 거냐고 물으니 아빠는 친구지라고 답하네요.(아지가 태어난 지 1206일째)”

 회사원 장정수(41)씨가 쓴 육아 일기의 일부다. 장씨는 ‘아지 아빠’로 유명하다. ‘아지’는 2009년 태어난 그의 첫딸 채은이의 태명이다. 장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채은이의 육아 일기를 1500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 ‘아지가 태어난 지 며칠째’로 시작하는 일기를 보려고 3000만 명 넘는 이들이 블로그를 찾았다.

 장씨 같은 유형을 ‘친빠’(친구 같은 아빠)라고 부른다. 엄한 가부장의 시대를 지나, 돈 벌어오는 하숙생 신세를 거쳤던 아버지 모습이 이젠 ‘친빠’로 달라지고 있다. 대중문화 콘텐트 속 아버지의 모습도 바뀌었다. 현재 TV 드라마·예능 부문 주간 시청률 1위인 ‘가족끼리 왜이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의 아버지는 친근 한 가족애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아버지상(像)의 변화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시각도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사회학) 교수는 “친구 같은 아빠라는 의미에서 해외에서는 ‘프렌디(Friendly Daddy의 줄임말)’가 유행하고 있다”며 “개인이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아버지 자체의 지위보다 어떤 아버지냐에 초점을 두게 됐고 잘해주고 친근한 ‘친빠’가 새로운 이상형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육아일기 쓰니 아이가 날 아빠로 키우는 느낌”

과거와 달라진 교육 환경도 이런 변화를 재촉한다. 성균관대 구정우(사회학) 교수는 “엄한 교육이 중요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자기주도학습, 참여하는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가 약해졌다기보다 달라진 훈육 방법에 따라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아버지상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육아 일기를 쓰기 전까지 장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 IT 회사에 다니면서 운동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소주 한잔 곁들이며 회포 푸는 걸 즐겼다. 2006년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때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그는 조금씩 달라졌다. 8번의 인공수정을 거쳐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했을 때 채은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장씨는 “좌충우돌 육아 과정에 아이가 나를 아빠로 키웠다”고 말한다. 육아 일기를 쓰면서 친빠가 된 셈이다. 그는 “만약 둘째가 생기면 또다시 육아 일기를 쓰겠다. 채은이가 아빠를 만만하게 보는 경향도 있지만 친구 같은 아빠가 좋다고 하고 나도 ‘친빠’가 좋다”고도 했다.

 친빠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현 건국대(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친근한 아버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포기해선 안된다.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아이들이 권위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아이와 친숙하게 지내되 규율과 절제의 중요성도 가정 안에서 교육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이지영·김호정·한은화·신진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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