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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는 기회의 문, R&D 확대가 재도약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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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0%→3.9%→3.4%.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이다. 지난해 4월부터 9개월 동안 발표 때마다 전망치는 떨어졌다. 지난 15일에는 3.4%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9분기만에 최저치인 0.4%에 그치면서다. 이 수치는 세월호 사고 당시(0.5%)보다도 낮은 것이다. 26일 KDB대우증권은 한국은행보다도 낮은 3.3%를 전망치로 내놓았다.

2377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83이다. 지난해 2분기 때 111이었던 BSI 지수가 급감한 것이다. 기업체감경기를 뜻하는 BSI가 100보다 떨어지면 이번 분기보다 다음 분기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내수기업이 수출기업보다 더 비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수든 수출이든 수요가 부진하다(48.3%)는 사실이다. 정부에게 가장 바라는 정책도 경기 활성화(50%)였다. 일본식 장기침체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신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가하락과 그에 따른 물가상승률 둔화가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개선하고 연료비 감소로 소비 여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담뱃세 인상과 ‘13월의 폭탄’이 돼버린 연말정산 개편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지만 상반기 중에는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가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회복세로 진입하면 한국 시장 역시 훈풍을 탈 수 있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 경제 회복세가 확산돼 세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면 우리나라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기업도 움츠러들기보다는 새로운 사업과 대규모 투자, 해외 진출 등 소비 침체를 뚫고 나갈 돌파구를 찾고 있다. 우선 첨단 기술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을 이끌어나가려는 기업이 많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 개발자 지원에 1억 달러를 투자하고 2017년까지는 삼성전자 TV, 2020년까지는 모든 제품을 사물인터넷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초고화질·곡면 TV, 가상현실 기기 같은 혁신적인 제품도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KT는 에너지 사용량을 15% 줄일 수 있는 ‘스마트 에너지’나 홀로그램 콘서트처럼 통신 분야의 틀을 뛰어넘는 첨단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기존 LTE보다 4배 빠른 초고속 이동통신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3G보다는 21배 빠른 서비스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5G’ 서비스를 목표로 기술 개발 중이다.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 LG그룹은 LG디스플레이가 초고화질 TV 패널 시장에서 대만업체를 누르고 점유율 세계 1위에 오르고, LG화학이 아우디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GS그룹은 말레이시아에서 합작 홈쇼핑을 개국하고, 토목과 건축 분야에서 해외 사업을 가속화한다. ‘화장품 한류’의 대표주자인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고객을 겨냥해 면세 사업을 강화하고 인구 1000만 이상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쿠션 화장품 등 ‘아모레식 화장법’으로 세계 화장품 시장의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CJ그룹은 말레이시아에 연간 7만t 생산 규모의 사료공장을 짓고, 물류 분야에서도 중국·동남아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5위권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도전한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이 이달 카자흐스탄에서 발전소 공사를 수주하고, 두산 퓨얼셀 아메리카를 통해 연료전지 분야도 강화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일본 전국여행업협회 회원 1000명의 방한을 추진하는 등 일본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효성은 1분기에 중국에 1만t 규모의 스판덱스 공장을 증설하고 중공업 분야에서 유럽과 중남미 시장 확대에 나선다.

소비 침체 시대에 대규모 투자로 정면 돌파하는 기업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18년까지 총 81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2020년까지 친환경차를 22종 이상으로 늘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조1100억원 늘린 3조3500억원으로 확정했다. 그룹 사상 최대 규모다. 롯데그룹도 신 성장동력인 아웃렛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마트 전용 온라인 배송센터 1호를 올해 열 계획이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조직 운영 방식과 수익성부터 다져나가는 기업도 적지 않다. SK그룹은 매출의 절반이 넘는 에너지와 화학 분야에서 유가하락 등 악재를 만나면서 경영전략 전환에 집중한다. 반도체에 기반을 둔 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축으로 관계사가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형태를 추진하고 있다. LG전자 구본준 부회장도 “수익성 기반의 성장을 실현하고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 사업 기회를 확보하자”고 신년사에서 강조했다. 포스코는 올해 핵심 키워드를 재무적 성과 창출로 정했다. 사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성과 창출 프로젝트에 대해 특별보상제를 강화한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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