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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해야 할 개혁이라면 정면 돌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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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 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지난해 11월 퇴임한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임 직전 본인 블로그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꼬집는 글을 올렸다. 김 전 이사장은 서울 신사동 아파트와 지방에 있는 땅을 합쳐 총 5억6000만원 상당의 재산이 있다. 올해부터 매년 4000만원 정도의 연금도 받는다. 그는 “퇴직 뒤 저는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고 보험료는 0원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난해 2월 세상을 등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언급했다. 월세 단칸방에 살면서 소득이 거의 없고 몸까지 아픈데도 건강보험료는 매달 5만140원씩 내는 모순을 자신의 사례와 비교해 설명한 것이다.

 이런 제도적 모순을 개선하자는 게 정부가 얼마 전까지 추진했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이다. 개선안이 시행되면 지역가입자 가운데 소득이 없거나 낮은 600만 명의 건보료가 내려간다. 반면 직장가입자·피부양자 가운데 소득이 높은 45만 명은 건보료가 올라간다. ‘송파 세 모녀’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극빈층 지역가입자를 구제하자는 현 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해 기자도 공감했다.

 그런데 송파 세 모녀 사건의 비극이 벌써 잊혀진 듯싶다. 개선안이 발표되기 하루 전인 지난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건보료 개편 논의를 올해 내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관 입장에선 일단 쏟아지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정일 수 있다. 문 장관은 “건보료 부담이 늘어나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연말정산 파동이 불거진 시점에 건보료 개선안을 내놓으면 증세 논란과 엮일 것이고, 여론이 악화되면 국회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개선안 발표 일정을 세 차례나 미뤘다.

 문 장관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연말정산 파동 이후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피했다고 치자. 그런 사이에도 저소득층 지역가입자들의 고통은 계속된다.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 체계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커간다. 장관이 봐야 할 건 특정 계층의 반발이나 여론의 동향이 아니다. 김 전 이사장이 지적한 현행 제도의 모순이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해법을 택하는 게 맞다. 기획단 소속 서울대 김진현 교수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우면 건보 부과체계 개선을 공론에 부쳐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될 일”이라고 주문했다.

 올해가 아닌 내년으로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북풍한설보다 더 차가운 현실에 처해 있는 국민을 보듬어야 한다. 문 장관이 다시 기자들을 불러 건보 개혁을 미루겠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해주기 바란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