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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요지경 교복업체 전쟁, 학부모만 헛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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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성탁
사회부문 기자

지난해 말 경기도의 한 중학교 앞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대형 교복업체 대리점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입학 예정인 학생들에게 교복 물려 입기를 권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교복을 팔아야 할 업체가 물려 입기를 홍보하는 것에 학생들도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업체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올해부터 국공립 중·고교에서 시행되는 ‘학교 주관 구매’를 방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교육부가 도입한 학교 주관 구매는 학교가 교복업체의 입찰을 받아 단가를 정하는 방식이다. 교복 값의 거품을 뺀다는 취지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국 국공립 중·고교의 83%가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개별 구매하던 때에 비해 교복값이 34% 낮아진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참여했다 떨어진 대형 업체 대리점들이 할인판매전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 대리점은 학교 주변에서 ‘학교 주관 구매제는 강제사항이 아니다’는 문구가 담긴 전단을 나눠줬다. 전단엔 학교에서 주관 구매제 참여 여부를 물으면 ‘교복을 물려 입겠다’고 답하라고 권유하는 내용도 담겼다. 물려 입는다고 하면 개별 구입이 가능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부 대리점은 재킷과 바지(스커트), 조끼, 와이셔츠(블라우스) 등 한 세트를 학교 측이 계약한 낙찰가보다 40%가량 저렴하게 내놓기도 했다.

 교복 값이 내려갔지만 학부모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 교복을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전단을 보니 가격 차가 없더라. 일부 외부 업체가 학교 계약 교복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기도 해 헛갈린다”고 말했다. 신청 학생들이 취소하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는 학교도 있다. 경기도 한 고교는 학생들의 외부 구매를 막다가 업체로부터 항의 편지를 받았다.

 업체 간 마찰은 소송전으로 번질 조짐이다. 중소 교복업체 모임 측은 “덤핑에 나선 대형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겠다”고 했다. 반면 대형 업체 측은 “정부가 시장에 맡기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복 값을 낮추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는데 업체 간 경쟁이 벌어지면서 가격이 내려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덤핑 소지가 있는지, 과대허위 광고가 있는지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학생과 학부모, 일선 교사들이 혼란을 겪는 만큼 교육부는 서둘러 정리를 해야 한다. 대형 업체들도 이렇게 할인할 수 있는데 왜 그리 비싸게 팔았느냐는 소비자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늘 학부모만 ‘봉’이 되는 교복 값 문제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김성탁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