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9)-제79화 육사졸업생들(2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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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보병학교 초등군사반 1차유학생들은 오클랜드에서 남북횡단열차 (일명 풀맨) 를 타고 닷새만인 9월28일 조지아주 포트베님에 도착했다.
풀맨을 타고가면서 고추장과 김치맛이 그리워 핫소스를 샐러드에 흠뻑쳐서 먹어버리는 통에 열차에 준비돼 있었던 3개월분 핫소스가 바닥났다는 것이다.
또 보병학교 식당에서 식사할대 맨 앞에 자리한 유학생이 삶은 달걀을 주문하면 뒤에 늘어섰던 유학생들도 너도 나도 『미 투』 『미 투』 하는 바람에 식당에서 한꺼번에 3백개이상의 삶은 달걀을 준비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육군 작전교육국장을 맡은 52년도부터는 유학생들을 보낼 때에 반드시 대구에서 오리엔데이션을 갖고 『미국에 가면 식사 때 삶은 달걀만 주문하지 말고 에그 프라이, 스크램불등 자기식성대로 시켜서 먹어라』 고 당부했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또 일어났다고한다.
보병학교 식당에서 한국장교들이 입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금새 삶은달걀을 3백개나 준비해 놓았는데 막상 아침식사때는 에그 프라이 등 갖가지 달걀 요리주문이 들어와 삶아놓았던 달걀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그날 저녁 식사에는 삶은 달걀을 이용해 만든 멕시컨 샐러드가 특별메뉴로 나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교육은 강의 1시간, 실습3시간의 비로 진행되었는데 미군교관이 영어로 강의하는 것을 한국군 통역장교가 우리말로 반복했기 때문에 1시간 강의가 2시간이상 걸렸다.
미군보병학교는 2차대전 당시 미군장교를 보습시킨 전통있는 교육기관으로 실질적이고 효율성 높은 교수방법을 채택했다. 낮에 독도법 강의가 있는 날은 야간에 산악훈련을 실시해 지도와 나침반 한개씩만 피교육자에게 휴대시켜 캄감한 밤에 생소한 목적지로 집합하는 훈련을 시켰다.
요즘 이 훈련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 민간기업체에 도입돼 「지옥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사원교육에도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동차운전 교육도 평지에서 코스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오는 날 밀림 속에 집어넣어 진흙탕 속을 헤쳐나오게하는 등 실제 전쟁터에서 예상되는 상황을 모조리 동원해 훈련시켰다고 한다.
말하자면 군사훈련은 이론의 이해보다 체득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당시 한국군장교들의 통역을 맡았던 분은 현재 총 통일교에 몸담아 활약하고있는 박보희씨 (중령예편),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있는 조상호중위 (층령예편) 와 한상국중위(주파나마대사)등20여명이었다.
이분들의 영어는 그때부터 미국인들을 뺨칠 정도였다고 귀국한 유학생들로부터 들었다.
하루는 통솔학 강의시간에 교관이 졸고있는 유학생을 불러 세워 지금까지 강의한 내용을 요약해 보라고 지시하자 지적된 학생은 어물어물 대답을 했지만 통역을 맡은 학생이 교관이 강의하지도 않은 이론까지 곁들여 대답했다는 것이다.
교관은 『역시 코리언은 우수하다』며 『베리 굿, 베리 굿』 을 연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밴·플리트」장군은 한국군 위관장교들의 유학을 당초 한번 정도로 끝낼 생각을 가졌으나 워낙 재학기간 중 성적이 우수하고 귀국해서 각급부대와 군교육기관에 보직돼 괄목할만한 파급효과를 거두자 7차까지 2천여명의 유학생을 미국에 보냈고 10기생들은 대부분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그래서 52년 진해에서 개교한 4년제 육사의 구대장은 모두 10기생이었고 동래에 있던 종합학교가 광주로 옮겨와 보병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개교했을 때 30여명의 10기생이 후보생들의 내부교육과 전술및 화기학 교육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김병시중위 (대령예편·현의료보험관리공단서울시지부장) 는 유학기간중에 작성한 노트를 기초로「전쟁원칙·전투준칙」 「사단단위 전술」 이라는 교안을 직접만들어 육대에서 차관급을 대상으로 4년동안 강의를 맡기도 했었다.
10기생들이 미국에 유학할 때 정부는 재정형편상 그들에게 하루 생활비로 5달러씩 계산해 월 1백50달러 밖에 지급하지 못해 무척 고생을 했겠지만 군수뇌부에서도 함께 걱정을했던일을 밝혀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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