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난리날 줄 알고도 손놓고 있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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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01면

2014년 1월 1일 오전 3시40분 국회 본회의장. 나성린(새누리당) 의원이 “의료비·교육비 등의 소득공제 항목을 세액공제로 전환한다”고 간단히 소득세법 개정안을 설명했다. 이어 안종범(새누리당) 의원이 “모처럼 여야가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자 하는 데 동의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법안은 찬성 245명, 반대 6명, 기권 35명으로 처리됐다.

불통에 먹통까지 겹친 연말정산 사태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1월. 2014년분 연말정산을 하던 납세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세금환급액이 확 줄었거나,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데다 그런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다. 이번 연말정산으로 50여만원의 소득세를 더 내야 할 회사원 김모(44)씨는 “세금을 토해내서 화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세제가 바뀌어 세금이 늘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분노가 치미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제개편안 발표에서 연말정산 대란이 발생하기까지 1년 반, 정책입안 단계까지 고려하면 2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정부는 정책의 고객인 국민의 공감과 동의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한자리에 모여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논의하는 작업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공무원들은 납세자들이 올 1월 연말정산을 할 때 세금 부담이 늘어날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조세공평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세수가 늘도록 세법 개정안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으로 세수가 93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담을 더 질 납세자는 200여만 명 선으로 추산했다. 처음부터 납세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관련 공무원은 “연말정산을 하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야기도 내부에서 나왔지만 누구도 앞장서 대책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도 “위에서 정한 방향에 맞춰 일하는 데 급급했다”고 인정했다.

제도를 일방적으로 만들기만 했지 국민과의 소통은 내 일이 아니라는 관료사회의 칸막이 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게 국민 입장에선 불통에 이은 먹통으로 비친 셈이다. 홍기용(세무학회장) 인천대 교수는 문제의 뿌리가 관련 조직 간의 의사소통 부족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청와대, 여당, 관료, 그리고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조세재정연구원은 연말정산 부작용을 예상했을 텐데도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에 얽매여 입을 다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홍보라인에서 일했던 청와대 전직 참모는 “부처를 넘어 사안을 크게 보는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여기에 관료집단의 안이한 판단이 겹쳤다”고 했다.

사후 소통은 더 미흡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납세자의 반발에 대해 지난 22일 “세율을 높이지 않고 세목을 신설한 게 아니기 때문에 증세는 아니다”고 말했다 되레 반발을 샀다.

이 같은 범정부적 설득 역량 부족은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가 최저치인 30%를 기록한 2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의 첫 번째 이유는 소통 부족(17%)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공소통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재웅(홍보디자인) 을지대 교수는 “국민은 통보의 대상이 아니다. 소통은 단순히 알리는 게 아니라 합의의 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소통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정부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청와대는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지난 23일 특보단을 신설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특보로 일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은 특보단의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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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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