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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의 메아리」 더 번지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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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전광용<소설가·서울대교수> 오늘로써 이산가족을 찾는 KBS-V의 생방송특별프로는 엿새째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동안 매일 계속 이 프로를 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것은 꾸며진 드라머가 아니라 뼈저린 우리의 현실이며 또한 가식이나 과장이 끼이지않은 절실한 진실의 충격과 감동이기 때문이다.
6·25전란이 터진지 3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세갑절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그 추억은 어제일같이 너무도 뼈저리게 생생하고 그 상처는 너무도 깊어 아물날을 바랄 길이 없다.
부모와 자식이, 그리고 형제·자매가 서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집안 내력과 흩어진 사연으로 핏줄기를 더듬고 몸의 상처나 이상적인 특징으로 겨우 혈육임을 확인하면서도 금방 그자리에서 오래 같이 살아온 익은 정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탄성을 발하는 것을 보면 혈연속에 깃들인 천리의 신비에 새삼 놀라지 않을수 없다.
20세기에 들어와 우리한민족처럼 불행하고 불우한 민족은 없을 것 같다.
8·15와 더불어 겹쳐진 국토의 남북분단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제3국끼리의 이해관계에 의해 38선으로 굳어졌고 6·25의 전쟁 또한 비록 동족끼리의 내란이라고는 하지만 중공·소련등 제3국의 사족와 원조에 힘입은 도발이었고 급기야는 중공군의 파병으로 전국을 더욱 파국으로 몰아넣고 말았으니 이 또한 제3국의 입김에 좌우된 결과의 비극이라고 하지않을수 없다.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나라 이겨레의 통일을 진심으로 바라고 애쓰는 민족이나 국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먼나라들은 남의 불보듯하고 가까운 이웃이나 떨어진 우방이나 모두들 자기들 이해관계, 속셈속에서 주변의 귀추를 저울질하고만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이나라가 영원히 통일되지않고 분단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자기들의 실속을 차리는데 더좋은 방도라고 바라고 있는지도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이나라 이겨레의 통일과 결합을 염원하는 것은 오직 이겨레뿐이요, 그것이 실천에 옮겨지는 길도 이겨레의 의지와 힘이 바탕이 되어야할 것이고, 이에 겹쳐 이른바 우방이나 적대국을 포함한 제3국의 이해와 협조가 곁들여져야 트여질수 있는 것이다.
6·25의 참상을 목격하고 「아시아의 비극」 이라고 애걸한 명명을 한사람도있고, 1960년대의 한국현실을 보고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극단적인 야유와 멸시로 이나라의 앞날을 거론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6·25의 페허에서 재생하여 재건의 꿈을 키워오고, 그 쓰레기통을 발판으로 장미꽃을 가꾸어가는 과정에 있다.
국민의 민도로나 산업의 발전상으로나, 그리고 국민소득에 있어서나 이제 우리는 후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위에서 남들의 불안이나 조바심을 디뎌 넘고 힘찬 도약속에서 희망에찬 미래로의 전진을 계속해가고 있다. 그리하여 처참한 비극을 불식하고 행운의 신의 손길에 닿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지금 TV화면을 보면서 그 나이많은 어른들이 몽매에도 잊지못하던 육친들을 부둥켜안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을보고 예절이나 체면을 벗어버린 어른은 그대로 순진한 동심의 어린이로 돌아갈수 있다는 것을 새삼거센 충격속에서 느꼈다.
TV를 매체로 하는 이러한 기획이 왜 벌써 이루어지지 못했던가. 그렇다면 이미 유명을 달리한 부모도 생존시에 만날수있는 가능성이 더 커졌을 것이고, 얼굴모습들도 덜변해 서로 알아보기 더쉽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사실 시책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들먹이기는하면서 그것이 구호에 그쳐있을뿐 실천면에서 너무 소극적이 아니었던가하는 생각도 없지않다.
그것은 한국일보에서「이산가족찾기 캠페인」을 장기간 벌여 큰 성과를 얻은 것이외에는 이같은 적극적인 기획·실천에 접한 기억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TV가, 그것도 인상이 선명한 컬러TV가 방영되기 시작하여 일반시청자에게 보급이 보편화된것이 얼마되지 않으므로 어쩔수 없는 일이아닌가하는 자위를 억지로 자문자답하기도 하는 심정이다.
이번 KBS의 기획이 가능한한 모든 희망자가 빠짐없이 흩어진 가족에게 자기의 소재를 알리는 기회를 갖게 할때까지 지속되고, 또 많은 이산가족이 재상봉의 행운을 맞을수있도록 기원하는 동시에 이러한 가족적인 염원이 조국통일에의 의지로 더욱 굳게 결속될 계기가 되기를 기구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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