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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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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중국 요(堯)임금 시대였다. 어느 날 멀쩡한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랐다. 동방의 천제 제준(帝俊)과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 사이에 태어난 열 명의 아들이었다. 하루에 하나씩 하늘에 오르게 돼 있었는데 장난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폭염에 찌든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 이에 천제는 활을 잘 쏘는 천신 예()를 불러 해결을 지시했다. 땅에 내려온 예는 활로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러나 예는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아들들을 죽이는 바람에 천제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예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던 부인 항아(嫦娥)의 실망도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예는 수명이 얼마 안 남았음을 깨닫고 곤륜산으로 불사의 약을 가진 서왕모(西王母)를 찾아갔다. 서왕모는 예의 간곡한 청에 두 사람 분량의 불사약을 줬다. 그러나 항아는 예가 없는 틈을 타 불사약을 혼자 다 마셨다. 몸이 가벼워지며 두둥실 하늘로 떠오른 항아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달로 숨었다. 배신의 죄 때문에 그녀의 몸은 두꺼비로 변했다고 한다.

중국에선 가장 먼저 달에 간 이로 항아를 든다. 신화 속 인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항아를 찾아 달로 가고 싶어한 예의 염원을 자신들의 꿈과 일치시켜 왔다. 그런 중국인들의 꿈이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중국은 12일 두 번째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6호'를 쏘아 올렸다. 선저우는 '신기한 하늘의 배(天河之舟)'를 뜻한다. 서왕모가 선계(仙界)를 오갈 때 탄 마차라는 이야기도 있다. 항아와 예를 이어줄 수 있는 끈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인류 역사상 처음 달에 발을 디뎠던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1988년 중국 베이징우주센터를 방문했다. "달에 가는 꿈을 꾼 최초의 사람은 아름다운 중국 여성이었다. 그러나 처음 달에 간 사람은 미국인인 나다." 이 말을 듣는 중국 과학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으리란 점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로부터 15년 만인 2003년 중국은 첫 유인 우주선을 올렸다. 또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2021년을 전후해선 달 탐사선을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이름도 정해 놓았다. '항아 1호'다. 예와 항아의 재결합을 주선할 모양이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