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 광고로 보는 세상] '당신은 특별하다'는 말 믿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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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많다. 심지어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광고인들이나 학교에서 광고를 가르치는 교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광고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어른들은 머리를 염색하고 귀를 뚫고 홍대 앞 클럽 같은 데를 기웃거리며 젊은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정말 아주 새로운 종족이 탄생했고, 전혀 다른 광고가 등장한 것일까.

과거 어른들이 자주 쓰던 말 중에 '후랍빠'라는 게 있었다. 한 마디로 '신세대 여성'을 뜻하는 단어였다. "옆집 며느리, 학교 때 후랍빠였대"라는 식으로 사용됐다. "좀 놀았다"는 뉘앙스도 갖고 있었다. 이 말은 미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1920년 이후 등장한 신세대 여성들을 일컫던 '플래퍼(flapper)'라는 단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배꼽을 예사로 내놓고 다니는 요즘 젊은 여성들이 그렇듯, 머리 짧게 자르고 고개 빳빳이 쳐들고 할 말을 다하는 이들 플래퍼들도 당시 기성세대의 우려와 선망을 동시에 받았다.

한 주방용 수세미 제조업체가 재빨리 이들의 편을 들었다. 27년 광고에서 'SOS 수세미'는 "왜 사람들이 플래퍼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이들이 훨씬 현명하고 살림도 더 잘한다. 우리 SOS 수세미는 플래퍼, 당신들 편이다"라는 메시지를 교묘히 섞는다. 광고에서 플래퍼인 한 여성이 약혼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내가 플래퍼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나도 살림 잘할 수 있어. 결혼만 해봐. 당신 어머니보다 내가 더 잘할걸. 그러나 난 노예처럼 일하지는 않을 거야. 그저 남자들이란 죽어라 일만 하는 게 살림이라고 생각한다니까."

날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친다는데 날 알아주는 회사를 위해 수세미 하나 못 사겠는가. 이 광고가 성공했음은 당연하다.

'어린 왕자'에서 사귀자는 어린 왕자의 청을, 여우는 "우리는 아직 길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그리고 '길들이기(apprivoiser)'에 대해 설명한다. 서로에게 길들여 지지 않았다면,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 중 하나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여우도 어린 왕자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이 둘이 서로에게 길들여졌다면, 여우에게 어린 왕자는 특별한 '한 아이'이고 어린 왕자에게 여우도 특별한 '한 여우'가 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현대인이 과연 몇 개의 광고 메시지에 노출되는가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실제로 광고 시장의 구조에 따라 나라마다 천차만별이기도 할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하루에 많게는 3000개의 광고 메시지에 노출된다고 한다. 이들 광고가 소비자와 서로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3000개는 모두 그저 그런 광고일 뿐이다. 아무리 새로운 방식의, 난해한 광고가 쏟아져도 '너만을 위한 광고'임을 내세우는'길들이기 광고'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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