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대의 화가 겸재 정선묘비 건립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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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적 화풍의 창시자이자 조선시대 최대의 화가로 추앙받고 있는 겸재 정선(1676∼1759)의 묘비를 세우자는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정양모(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안휘준(서울대교수) 이태호(전남대교수)씨 등 미술사학계 학자들이 중심이돼 일고 있는 이 운동에는 박주환씨(동산방화랑대표)등 고미술동호인들도 적극 참여할 뜻을 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겸재의 묘비를 세우려면 우선 그 묘소를 찾아야 하는데, 「겸재묘소찾기 운동」이 갑자기 일어나게 된 것은 지난4일 제25차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이태호교수가「겸재 정선의 가계와 생애」를 발표하는중 지금까지 미궁에 묻혔던 그에 관한 사실들과 함께 묘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냈기 때문.
『광주정씨세보』조사결과 겸제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학성리라고 적혀있는데『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곳은 현재 연산군묘소가 있는 서울시 도봉구 쌍문2동 정의여고뒷산 부근이 된다.
겸재묘소의 위치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자료로는 그의 손자며 당시 또한 화가로서 이름이 높았던 정황이그린「양주송추도」(개인소장품)가 있다. 이 작품은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을 배경으로한 언덕에 겸재의 묘소가 있는 것으로 그려져 두자료의 일치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의 필요성을 제일먼저 주장한 정양모실장은『만약 겸재가 없었다면 우리 회화사에서 민족적인 양식이 과연 가능했겠느냐고 의심할 정도로 겸재는 우리나라 회화사의 최대 거장이며, 그의 묘소를 찾아 위업을 기리는 것은 미술사연구가들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묘비건립의 의의에 대해 안휘준교수는『겸재의 민족적인 화풍의 확립은 회화사뿐만 아니라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이며, 그가 진경산수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한 것은 민족적 자각과 자아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후대의 미술인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이 겸재의 회화사적 위치와 업적이 어느 작가보다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은 그가 중국화의 규범을 벗어나서 금강산·인왕산·서울근교의 명산 등을 직접 사생, 현장감 넘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국화의 관념적인 산수와는 전혀 다른 겸재의 사생화를 당시부터「진경산수」라고 불러왔고 이후 영·정조시대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따라 많은 실경을 그림으로써 한국화풍의 확립을 보게 된 것이다. 이동주박사는 강희언 김윤겸 김홍도 김석신 김응환 등 화가를「겸재일파의 진경산수」로 분류하고 있다.
그동안 그의 화명과는 달리 생애는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뿐, 그가 사대부였는지 화원이었는지 미술사의 논점이 돼왔으나 최근 이교수의 연구발표로 그가 몰락한 양반 출신이었다는 점등 많은 사실들이 확인됐다.
그러나 현재 겸재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이미 많은 집들이 들어섰고 남아있는 묘자리에도 문인석·무인석이 방치돼있으며 심지어 묘소위에 그대로 나무를 심어 대가 끊긴 겸재의 묘소를 찾는데는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먼저 문화재관리국과 서울시문화재위원회에 의뢰, 이 지역에 대한 학술조사를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며, 많은 이들이 동참해 멀지않아 한국최대화가에 대한 최초의 회화기념비가 새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유홍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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