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217. 롯데 '당장 먹기엔 곶감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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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이 밀려났다. '밀려났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가 해임된 것도 아니고, 사임한 것도 아니어서다. 그는 2003년 이맘때, 롯데와 2년 계약을 했다. 그리고 그 계약기간이 지나 구단 쪽에서 감독을 바꾸겠다고 결정했다. 2년 동안에 그가 거둔 성과는 양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더 나은 결과를 원했고, 그 눈높이를 만족시켜줄 새 사령탑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시즌이 끝나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야구인은 양상문 전 감독이 내년에도 롯데의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3년간 최하위를 헤매던 팀을 맡아 2년 만에 5위까지 끌어올렸다. 순위도 순위지만 내일이 있는 야구가 진행 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계약연장이 유력해 보였다. 그는 내년 시즌을 대비한 마무리 훈련을 구상했고,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감독 교체를 의외로 받아들인 일부에서는 '외부 압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임 강병철 감독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부산상고 출신이며, 그 부산상고 인맥이 나서서 구단주의 마음을 감독 유임에서 교체 쪽으로 움직였다는 소문이다. 일부는 양상문 감독이 토대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는 경험 많은 강병철 감독을 내세워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때가 됐다고 지지하기도 한다.

'낙하산 설'의 진위 여부, 또 강병철 감독의 영입 시점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롯데가 진행 중이던 장기적 팀 체질개선의 지휘자가 2년 만에 중도하차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8위에서 5위로 순위가 올라갔는데도 '모자란다'고 감독을 내쳤으니 신임 강병철 감독이 중장기적 비전 제시보다는 성적에만 매달리게 미리부터 족쇄를 채워놓은 셈이다. '4강에 못 들면 실패'라는 기준을 만들어 놓고 승리에 집착하는 야구가 롯데를 살릴 것이라고 선언한 격이다.

강병철 감독은 롯데를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84, 92년)으로 이끈 명장이다. 그러나 그도 최근에는 '우승시키는 감독'이 아니라 '토대를 만드는 감독'의 성향이 더 강했다. 강 감독은 SK 감독을 맡았던 3년 동안(2000~2002년)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팀의 발판을 다지고, 내일을 준비하는 스타일로 이끌었다. 그래서 2003년 조범현 감독의 SK가 한국시리즈에 올랐을 때 "강병철 전 감독이 만들어 놓은 팀을 조범현 감독이 완성한 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롯데는 강 감독과도 2년 계약을 했다. 삼성(5년), LG.기아(이상 3년) 등 중장기 비전을 가지고 팀을 이끄는 사령탑들과는 다르다.'오늘의 성적'만 중요할 뿐 내일을 위한 준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미래는 당연히 어둡잖은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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