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백수도 월요일은 죽을 맛…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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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내 눈치 좀 보다 일례 행사로 인터넷 구직 사이트 쭉 훑어보고 나니 9시 반 정도 된다. 다음에 무엇을 할까? 도 닦는 심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메일을 보내고 인터넷 바둑을 죽자사자 둘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어느 백수의 고백입니다. 주말이 그렇게 기다려지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쉬는 날이라서 백수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가기 때문이라나요. 대신 월요일은 죽을 맛이라네요. 남들 다 출근한다고 나서는데 갈 데가 없어서, 한 주를 또 어떻게 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떨려난 40대 가장은 이를 '백수의 월요병'이라 합니다. 월요일이면 일의 능률이 안 오른다는 직장인들의 '월요병'에 견준 거죠. 그리고 이를 제목 삼아 백수생활의 애환을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묶었습니다.

직장 다니는 아내의 늦은 귀가에 조바심친 아픔이 담겼습니다. 저녁상을 차리다 형수에게 전화해 조리법을 물었던 부끄러움도 드러냅니다. 아들 생일 케이크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 이야기도 있고 고향의 부모에게 새삼 느끼는 고마움, 백수를 대하는 이들의 갖가지 행태에 대한 섭섭함도 담았습니다. 그렇다고 구질구질하지는 않습니다. 자기 처지를 관조하는 듯한 지은이의 담담한 글쓰기를 읽다 보면 때로 슬픔이나 아픔도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드디어 돼지 저금통을 털었다. 기분 한번 정말 더럽다. 아내는 전혀 모른다. '쪽 팔려' 말할 수도 없다. 아이에게 준 용돈도 회수하여 다 썼다."

이 철없는 사내는 그러고는 이렇게 자문합니다. "백주 대낮에 은행에서 동전 무더기를 바꾸는 40대 후반의 이 남자는 누구인가. 구멍가게 주인인가, 좀스러운 바늘도둑인가"하고.

문득 생각합니다. 도대체 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남다른 식견, 깊은 지식, 올바른 생각에서 올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보면 솔직함도 그 못지 않은 흡인력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태백'(20대의 태반이 백수)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꼭 백수가 아니라도 항상 외줄 타듯 살아가는 이 시대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맞춤인 책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당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는 아내의 말에 속으로 찔려서 움찔했다. 아빠를 사랑한다며 부디 막말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큰 아이의 간절한 눈빛에 속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지은이도 백수생활의 가장 큰 소득은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히 새긴 것이라니 미리 간접체험하는 것도 나름대로 뜻이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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